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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대신 ‘SI’…트럼프 작명에 담긴 美·中 패권 셈법 [IT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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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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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9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그랜드 포이어의 대계단 앞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미국 정부 문서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이름이 사라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대신 ‘슈퍼 인텔리전스(Super Intelligence·SI)’를 공식 용어로 쓰도록 못 박으면서다.

단순한 이름 바꾸기로 치부하기에는 의미가 작지 않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을 기술력을 넘어 규범·표준 경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SI’라는 새 이름에도 미중 패권 경쟁의 셈법이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연방 행정부가 정책·공문서 및 대외 커뮤니케이션에서 AI 대신 SI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소셜미디어 투표에서 유엔 연설까지…AI 개명 밀어붙인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부정확하고 투박하다”며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다.

후보에는 ‘슈피리어 인텔리전스(Superior Intelligence)’ ‘익스트림 인텔리전스(Extreme Intelligence)’ ‘슈프림 인텔리전스(Supreme Intelligence)’ 등이 올랐다. 5만명 이상이 참여한 투표에서는 ‘슈퍼 인텔리전스’가 65%를 얻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시작된 이름 바꾸기는 곧 미국 정부 공식 언어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인공’이라는 말이 지능을 가짜처럼 들리게 한다”며 “앞으로 미국의 모든 문서, 그리고 바라건대 전 세계 문서가 ‘슈퍼’라는 훨씬 정확한 용어를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미국 국무부는 외교관들에게 관련 표기를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튿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는 미국 대표단이 실제 SI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뒤 나온 행정명령은 이를 연방정부 차원으로 확대했다. 미국 연방 부처는 향후 공문서와 정책 자료, 대외 커뮤니케이션에서 SI를 사용하고 AI라는 표현은 원칙적으로 쓰지 않는다. 다만 이미 발효된 규정이나 기존 계약서까지 소급해 고칠 필요는 없도록 했다.

SI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정의는 마이클 크라치오스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이 마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주요 기술기업 수장들과 ‘SI에 관한 백악관 협약’에도 서명했다.

◆학계 ‘초지능’과 다른 SI…이름 바꾼다고 챗GPT가 초지능 될까

문제는 슈퍼 인텔리전스라는 표현이 AI 연구 분야에서 이미 다른 의미로 사용돼 왔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은 통상 거의 모든 지적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가상의 AI를 의미한다. 철학자 닉 보스트롬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AI 안전 분야에서는 미래 초고도 AI 위험을 논의할 때 주로 등장한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SI는 이와 다르다. 현재 개발·서비스되고 있는 AI 전반을 지칭하는 새로운 명칭에 가깝다. 챗GPT와 클로드, 제미나이 같은 기존 생성형 AI 서비스를 정부 문서에서 SI라고 부른다고 해서 기술적으로 초지능 단계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같은 Super Intelligence라는 표현을 두고 학계와 미국 정부가 서로 다른 대상을 지칭하게 된 셈이다. 향후 정책·산업 문서에서 개념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새 명칭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기술 경쟁의 주도권을 언어와 규범 경쟁까지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중 AI 대화도 ‘SI’로…중국은 존중하되 이름은 그대로

실제 SI라는 용어는 곧바로 미중 외교 무대에 등장했다.

백악관은 지난달 2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문 결과를 담은 팩트시트에서 양국이 ‘SI의 위험과 이익’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한 ‘미·중 SI 대화’를 신설하고 다음 회의를 오는 11월까지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AI 관련 사고 발생 때 양국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별도 채널도 구축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 간 ‘핫라인’에 빗대기도 했다.

백악관은 특히 양국 정상이 인공지능 대신 슈퍼 인텔리전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중국의 설명에는 온도차가 있다.

일본 IT매체 아스키에 따르면 중국은 공식 발표에서 여전히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도 지난달 26일 미국의 새로운 용어 사용을 존중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중국 측 발표에서도 AI 위험과 이익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와 사고 대응 소통 채널 구축은 언급됐지만 용어 자체를 SI로 변경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과 AI 안전 및 위험 관리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미국이 만든 새로운 이름까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 셈이다.

이번 개명을 단순한 말장난으로만 보기 어려운 지점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자리에서 “AI를 이기는 자, 이제는 SI를 이기는 자가 이긴다”고 말했다. 결국 AI 패권 경쟁에서 기술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어떤 언어와 기준으로 해당 기술을 규정할 것인지까지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 간 직접 대화는 이어가되 이를 국제기구 중심의 다자 규제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로 확대하는 데는 거리를 두겠다는 취지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슈퍼 인텔리전스라는 표현이 첨단 AI 모델 성능을 강조하려는 미국 AI 기업들에게 일종의 ‘브랜딩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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