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인기 뒤엔 가품 그림자…AI 만나 더 정교해졌다

에이피알 메디큐브 제로모공패드. [사진=에이피알]
[디지털데일리 유채리 기자] K뷰티 인기가 높아질수록 가품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입하는 게 일상이 된 가운데 인공지능(AI) 발달로 가품 제작까지 고도화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 모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화장품 업계에 가품 논쟁이 다시 뜨거워진 계기는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SA)이 에이피알의 스킨케어 브랜드 메디큐브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며 회수 조치를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HSA는 현지 판매업체 3곳을 통해 유통된 제품 샘플을 검사한 결과, 금지 성분인 수단레드가 미량 검출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유통 주체와 경로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에이피알이 HSA 검사 대상인 샘플의 배치(제조번호)를 추적한 결과, 수단레드가 검출된 제품의 싱가포르 공식 수출 이력이 확인되지 않았다. 샘플 판매처 중 한 곳인 비너스 뷰티 역시 에이피알이 제품을 공급한 적 없는 업체다.
에이피알은 싱가포르 법인이 HSA에 제공한 정식 제품은 물론 지난달 31일 추가로 의뢰한 공인시험기관 검사에서도 수단레드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사는 "비너스 뷰티는 에이피알이 직접 제품을 공급하거나 수출한 업체가 아니며 당사의 싱가포르 공식 유통 경로에도 포함돼있지 않다"며 "해당 배치 제품의 싱가포르 공식 수출 이력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공식 수출 이력 없다"…반복되는 K뷰티 가품 피해
가품 문제는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K뷰티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될 만큼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품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해외 온라인에서 차단된 K브랜드 위조 화장품은 2023년 1만6774건에서 2024년 2만3494건, 지난해 3만6116건으로 늘어났다. 단속에 걸리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실제로 법적 대응에 나선 K뷰티 브랜드도 잇따르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가히'를 운영하는 코리아테크는 올해 초 아마존US와 월마트 등에서 가품을 판매하는 셀러를 대상으로 10여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브랜드 '조선미녀'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도 올해 미국에서 위조 상품 판매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 틱토커가 브랜드 '조선미녀' 가짜 웹사이트를 경고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사진=틱톡 갈무리]
구다이글로벌 측은 "피고들이 아마존, 이베이, 월마트 등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진짜 판매자인 것처럼 위장했다"며 "조선미녀의 위조 상표가 부착된 가짜 화장품을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유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 "계정만 바꾸면 그만"…추적 어려운 온라인 유통
이런 피해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온라인 채널 특유의 구조적 한계가 있다. 오프라인 매장은 입점 심사, 매대 관리, 대면 판매라는 검증 단계를 거치지만 오픈마켓,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판매자 등록 절차가 간소하고 실명 확인이 느슨한 경우가 많다. 판매자가 문제를 지적받으면 계정을 닫고 다른 이름으로 재등록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상품이 해외 물류센터나 개인 배송 대행을 거쳐 국경을 넘나드는 구조라 가품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기 더 어려워졌다. 미국 정책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4년 한 해 80개국 1500개 플랫폼에서 K뷰티 위조 의심 게시물이 111만건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AI 발달이 가품 문제 해결을 한층 더 까다롭게 만들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상품 성분표와 패키지 복제는 물론, 온라인 판매 웹사이트 생성, 가짜 리뷰·후기 작성까지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 하루 1만개까지…AI 만나 더 정교해진 가품
해외 브랜드 보호업체 ACVISS 분석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활용할 경우 기존 방식으로 하루 100개 가량 만들 수 있던 가짜 판매 게시물을 하루 1만개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가짜 K뷰티 판별법', '가품 K뷰티 주의!' 등의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기업 자체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픈마켓 등을 통해 누구나 인증되지 않은 제품을 간편하게 유통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며 "패키지 QR코드 삽입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사후 대응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신규옥 을지대 뷰티아트전공 교수는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어떤 경로로 유통됐는지가 소비자 안전과 직결된다"며 "오픈마켓, SNS에서는 판매자가 계정을 옮겨가며 판매할 수 있어 유통 경로가 불확실해지고 동일 가품이 반복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비자 피해 반복과 정품 브랜드 이미지 타격으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그는 사전 검증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QR코드 등 인증 방식도 코드 자체가 복제되거나 가짜 인증 페이지가 만들어지는 등 무력화될 수 있어서다.
신 교수는 "플랫폼이 AI로 비정상적 저가 판매, 이미지 도용, 조작 의심 후기, 반복적 계정 변경 등을 선제적으로 탐지해야 한다"며 "적발된 판매자·공급 경로 정보를 플랫폼·브랜드·관계기관이 공유해 다른 채널로의 재유통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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