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넘어 달러 패권 재편”…세계가 주목하는 美 ‘클래리티법’ 뭐길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미국의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에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상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구분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독 영역을 명확히 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미국이 이 법안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더 큰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상자산 기업을 미국에 붙잡아 두고 월가 자본을 디지털자산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달러와 미 국채의 영향력까지 디지털 금융시장으로 넓히려는 구상이다.
15일 외신과 미국 의회 등에 따르면 미 상원에서는 클래리티법을 둘러싼 막판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시간 15일에는 법안 심의를 이어가기 위한 절차표결이 예정돼 있다. 최종 통과 표결은 아니지만 법안을 다음 단계로 넘기려면 60표가 필요하다.
◆美, 클래리티법으로 가상자산 규제 정비…월가 진입 문턱 낮춘다
클래리티법의 출발점은 미국 가상자산 시장의 고질적인 규제 불확실성이다. 그동안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증권이라면 SEC, 상품이라면 CFTC의 감독을 받아야 하지만 둘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
클래리티법은 이 경계를 법으로 정리한다. 디지털자산별 감독 기관을 정하고 거래소와 브로커 등이 지켜야 할 등록·고객보호 규칙도 마련한다. 지금까지 ‘사업을 먼저 시작한 뒤 문제가 생기면 법정에서 따지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미리 정해진 규칙 안에서 사업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규칙이 명확해지면 은행·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월가 금융회사도 움직이기 쉬워진다. 미국으로서는 가상자산 기업과 기술의 해외 이탈을 막는 동시에 월가 자본까지 자국 디지털자산 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여기에 지난해 제정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맞물린다. 지니어스법이 ‘디지털 달러의 규칙’을 만들었다면 클래리티법은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칙’을 세우는 법에 가깝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美 국채 새 수요처로…달러 영향력도 확대
특히 주목할 대목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의 새로운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니어스법에 따라 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액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보유해야 한다. 준비자산에는 현금과 미 단기국채 등이 포함된다.
한 예로 해외 투자자가 100달러어치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면 발행사는 이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마련해야 한다. 이 자금으로 미 단기국채를 매입하면 투자자는 스테이블코인을 샀지만 결과적으로 돈은 미 국채시장으로 흘러간다.
‘전 세계 자금→달러 스테이블코인→미 국채’라는 새로운 자금 흐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대규모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을 이어가야 하는 미국에는 의미가 크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커질수록 발행사가 확보해야 할 준비자산도 늘어나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미 단기국채로 향하면 새로운 국채 수요층이 생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미 국채 수요를 늘리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해온 배경이다.
다만 미국이 국가부채 때문에 디지털자산을 담보로 국채를 발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채 발행을 이어가야 하는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국채의 새로운 수요 기반을 넓히는 구조로 보는 게 정확하다.
달러의 영향력도 넓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 달러 패권은 무역 결제와 외환보유액, 미 국채시장,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망 등을 기반으로 유지돼 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 미국 은행 계좌가 없는 해외 이용자도 디지털 지갑을 통해 달러를 보유하고 송금할 수 있다. 달러가 움직이는 길이 기존 ‘은행·스위프트망’에서 ‘블록체인·디지털지갑’까지 넓어지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커지면 은행 예금 이탈…금융시장 지형도 바뀐다
반면 기존 은행에는 타격이 될 수 있다.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핵심 자금줄인 예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은 고객의 예금을 바탕으로 기업과 가계에 대출한다. 하지만 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예금→은행→대출’로 흐르던 돈 일부가 ‘스테이블코인→미 국채’로 방향을 틀 수 있다.
예금이 줄면 은행의 대출 여력도 위축된다. 고객을 붙잡기 위해 예금금리를 높이면 조달비용도 커진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에 예금 이자와 비슷한 보상이 붙을 경우 자금 이탈이 빨라질 수 있다는 게 미국 은행권의 우려다.
증권시장에서는 ‘토큰화’가 또 다른 변수다. 주식·채권 등 기존 금융자산을 블록체인에서 거래하는 토큰화가 확산하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수단으로 붙으면 블록체인에서 주식과 채권을 사고 대금까지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시장이 가능해진다. 월가의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 시장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위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국채 수요가 늘어난다고 재정적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면 발행사가 준비자산인 미 국채를 한꺼번에 팔면서 단기 금융시장을 흔들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단순한 ‘코인 육성’에 그치지 않는다. 지니어스법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길을 열고 클래리티법으로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칙을 세워, 가상자산 산업과 월가 자본을 미국에 묶어두는 동시에 세계의 디지털 자금을 달러와 미 국채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달러 패권의 무대를 블록체인까지 넓히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클래리티법에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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