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산업 총재원 확대 없인 적정 분배 논의 무의미”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콘텐츠 사용료 갈등을 풀려면 유료방송의 수익 기반부터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요금 규제 완화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을 통해서다. 유료방송 사업자의 지급 여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가운데, 한정된 재원 안에서 콘텐츠 사업자의 몫을 늘리는 것은 당장의 숨통을 틔울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정현 고려대 교수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K-방송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위한 합리적인 유료방송 콘텐츠 보상체계’ 세미나에서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방송통신서비스 요금 인상을 억제해 온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콘텐츠 가치보다 ‘협상력’…적정 대가 기준은 부재
콘텐츠 사용료는 IPTV·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사업자가 시청자로부터 받은 수신료 일부를 채널 제공 대가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지급하는 금액이다.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사업자 간 갈등은 수년째 반복돼 왔다. 콘텐츠 사업자는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유료방송 사업자는 비용 부담을 줄이려 한다.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이해관계 충돌로, 결국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냐가 핵심이다.
문제는 현재 시장에 ‘적정 수준’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콘텐츠와 플랫폼 각각의 경쟁력과 별개로 최소한 어느 정도를 지급하거나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부재하다. 이 때문에 콘텐츠 사용료가 ‘콘텐츠의 가치’보다 개별 사업자의 ‘협상력’에 따라 결정돼 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콘텐츠 대가 지급 수준은 산정 과정에서 분모와 분자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같은 플랫폼군 안에서도 차이는 컸다. 플랫폼별 경쟁력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유료방송 플랫폼과 PP 간 적정 수익 배분 구조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교수는 “플랫폼은 콘텐츠 사용료를 이미 충분히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PP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지만 정작 이를 판단할 이론적 근거가 없어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되고 있다”며 “콘텐츠 대가 지급 수준의 적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이론적 근거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쉬 모형 적용하니…적정 지급액과 1조3000억원 격차

김정현 고려대 교수는 계약을 통해 발생하는 순증이익과 콘텐츠 투자 부담을 양측이 절반씩 나눈다고 가정한 내쉬(Nash) 협상 모형을 적용해 적정 콘텐츠 사용료를 추산한 결과, 2025년 적정 지급액은 약 2조9000억원으로 추정됐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1조6000억원으로 약 1조3000억원의 격차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김정현 교수 발제 자료 기반 AI 생성 이미지.
그렇다면 시장 협상력과 별개로 적정 콘텐츠 사용료는 얼마일까.
연구진은 계약을 통해 발생하는 순증이익과 콘텐츠 투자 부담을 양측이 절반씩 나눈다고 가정한 내쉬(Nash) 협상 모형을 적용해 적정 콘텐츠 사용료를 추산한 결과, 2025년 적정 지급액은 약 2조9000억원으로 추정됐지만 실제 지급액은 약 1조6000억원으로 약 1조3000억원의 격차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적정 지급액과 실제 지급액 간 격차는 지속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지급액과 실제 지급액 간 격차는 2021년 약 9090억원에서 2024년 약 1조3664억원으로 확대됐고, 2025년에도 1조2595억원에 달했다. 다만 이 격차는 실제 미지급액이 아니라 연구진의 모형과 가정에 따른 추정치라 밝혔다.
김 교수는 “유료방송 생태계의 악순환 구조를 벗어나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콘텐츠 제작과 투자에 적절한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급하는 데 있다”면서도 “이 같은 분석이 모든 콘텐츠 사업자에 대한 일률적인 지급액 인상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 적정 대가만으론 부족…“결국 전체 재원 키워야”

그럼에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방송산업 외부에서 새로운 재원이 유입되지 않은 채 기존 수익만 재분배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 콘텐츠 대가체계의 격차를 줄여가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플랫폼의 지급 여력이 제한된 만큼 결국 분배할 재원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를 위한 가격 조정이나 사업구조 개편에도 제도적 제약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유료방송 사업자는 콘텐츠 사용료가 올라도 이를 가입자 요금에 반영하기 어렵고, PP 역시 협상이 결렬됐다고 곧바로 송출을 중단하기 쉽지 않다.
학계에선 이런 제약을 그대로 둔 채 시장 자율에만 맡겨온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봤다. 자율 협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공공 영역은 시장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더라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적 지원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상파 재송신료와 PP 콘텐츠 사용료가 하나의 제로섬 게임처럼 엮이는 현재의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에는 주편성 비율 규제나 요금 약관, 채널 구성 등에서 보다 과감한 자율권을 줘야 한다”며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고 지원이 필요한 콘텐츠 사업자에는 더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어야 시장 경쟁이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곽동균 KISDI 박사도 “콘텐츠 비용을 방송사업자에게 더 부담하라고만 하면 결국 ‘못하겠다’며 시장을 떠나는 사업자가 나올 수 있다”며 “방송계 내부에서 제로섬 게임을 할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비용을 부담하고 재원을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지금은 방송광고가 급격히 무너지고 있어 산업 상황이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며 “광고시장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하면서 객관적인 대가 기준을 마련하고 콘텐츠 제작자에게 충분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원을 늘리는 것과 함께 콘텐츠 가치를 보다 정교하게 평가할 기준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분배할 몫이 커지더라도 콘텐츠별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면 적정한 대가 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채정화 MBC 박사는 “시청률이 기존 실시간 TV에만 머무르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이용까지 함께 측정할 수 있도록 고도화돼야 한다”며 “그래야 콘텐츠 대가와 배분 수준도 보다 엄밀하게 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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