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까지 가세한 AI 자체칩…FC-BGA 수급 더 타이트해질 것"

KPCA 쇼 2026 부대 행사인 '국제심포지엄(INSIGHT 2026)'에서 발표하는 노근창 세미콘리서치랩 대표
[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첨단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맞물려 새로운 성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구글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맞춤형반도체(ASIC)의 외부 공급을 늘리면서 별도 공급망관리(SCM) 체계를 구축하는 데다, AI 가속기의 대형화·고다층화까지 겹치면서 FC-BGA 등 고사양 기판 수요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노근창 세미콘리서치랩 대표는 9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KPCA Show 2026 국제심포지엄(INSIGHT 2026)'의 발표자로 나서 "내년에는 엔비디아에 이어 구글이 외부 판매를 확대하면서 경쟁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며 "가속기 숫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기판의 고다층화와 대면적화도 이어지면서 수급이 상당히 타이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AI 인프라 시장은 그동안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범용 GPU 기반 시스템이 주류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총소유비용(TCO) 절감과 주도권 확보를 위해 구글, 아마존웹서비스(AWS),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하이퍼스케일러가 자체 ASIC 개발을 확대하면서 관련 칩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사업자가 자체 ASIC을 외부 고객에게 제공하는 범위까지 넓히면서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다. 앤트로픽은 지난해 10월 구글 클라우드 TPU 사용량을 최대 100만개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1기가와트(GW)를 훌쩍 넘는 컴퓨팅 용량이 추가될 예정이다.
ASIC의 외부 공급이 늘수록 독자적인 후공정 공급망 확보 필요성도 커진다. TPU 등 AI 가속기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뿐 아니라 ASIC에 최적화된 패키징 공정과 기판을 함께 요구한다. 기존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와 별개로 OSAT와 기판 업체를 새롭게 확보해야 하는 만큼 전체 패키징 생태계의 신규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노 대표의 설명이다.
노 대표는 "구글이 외부 판매를 확대하려면 OSAT와 서브스트레이트 업체를 직접 고르고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돼 있었지만 구글도 자신들만의 공급망을 구성해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표는 FC-BGA 수요가 출하량뿐 아니라 면적 기준으로도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AI 가속기는 일반 PC·서버용 프로세서보다 패키지 크기가 큰 데다 HBM과 칩렛 등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야 한다. 연산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공급과 고속 신호 전달을 위한 회로 설계도 복잡해지면서 기판 면적과 적층 수가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노 대표는 "가속기 숫자 자체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판은 멀티레이어 수가 많아지고 사이즈도 커지고 있다"며 "장수보다는 면적 기준으로 봤을 때 기판 수급이 훨씬 타이트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핵심 패키지 기판 업체 이비덴도 AI 인프라 수요 확대에 맞춰 고객군과 생산능력을 넓히고 있다. 노 대표는 "이비덴은 당초 인텔향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준비했지만 최근 AI와 에이전틱 AI 확산으로 CPU 수요까지 좋아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며 "xPU 관련해서는 엔비디아 외에도 구글이나 시스코 같은 고객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고 관련 수요도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범용 서버 시장의 회복도 기판 수요를 밀어올리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았다. AI 에이전트 확산과 클라우드 인프라 확대에 따라 GPU·ASIC뿐 아니라 CPU를 비롯한 범용 연산 자원의 수요가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노 대표는 "CPU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일반 클라우드 쪽에서도 CPU 수요가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기판 업체들과 얘기해보면 지금처럼 수급이 타이트했던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AI 인프라가 개별 가속기를 넘어 랙과 데이터센터 단위로 확장되면서 네트워크 반도체용 고사양 기판 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마벨은 AI 연산 성능이 빠르게 높아지는 가운데 향후 AI 인프라의 주요 병목이 컴퓨팅에서 커넥티비티로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속기와 서버, 랙, 데이터센터 사이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높은 대역폭과 낮은 지연시간으로 이동시키는 능력이 전체 시스템 성능을 좌우할 수 있어서다.
노 대표는 "앞으로는 랙 안에서만 연결하는 게 아니라 여러 시스템을 연결해서 쓰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네트워킹과 스위칭 칩 수요가 늘고 선단공정을 적용한 하이엔드 칩 비중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맞춰 기판 역시 고사양화되고 레이어 수도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패키징 업계의 AI 대응 투자가 확대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FC-BGA 등 기판 생산능력 확충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CAPEX) 전망을 600억~640억달러로 높이고 이 가운데 10~20%를 첨단 패키징과 테스트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앰코테크놀로지도 미국 애리조나주에 첨단 패키징 생산거점을 구축 중이며, 구글이 차세대 TPU 일부에 인텔의 EMIB 패키징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노 대표는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까지 앞으로 수년간 생산능력을 계속 높이는 방향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칩을 만드는 생산능력만 늘어서는 안 된다. 그 물량을 받아줄 기판 생산능력도 같이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판 업체들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상당히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으로는 AI 패키지의 대형화가 기판 소재 자체의 변화까지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가속기와 HBM, 각종 칩렛을 하나의 패키지에 집적하면서 면적이 확대될수록 기존 유기 소재 기판에서는 휨 현상을 비롯한 물리적 한계를 관리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치수 안정성과 평탄도가 높은 유리를 코어 소재나 인터포저로 활용하려는 기술 개발이 이어지는 이유다.
노 대표는 "일본에서도 글래스 인터포저를 놓고 소재 업체들과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TSMC 역시 패널레벨패키징(PLP) 형태의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크랙 발생 시 검사 문제 등으로 글래스 인터포저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지만 최근 관련 기술을 준비하는 업체들이 늘면서 유리기판뿐 아니라 유리 인터포저 시장도 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글래스코어와 글래스 인터포저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점은 2030년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유리기판 시장 진입을 노리는 삼성전기와 SKC, LG이노텍 등 국내 기업들도 고객사의 실제 적용 시점에 맞춰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양산 준비를 구체화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봤다.
노 대표는 "CPO부터 적용되고 2030년부터 글래스를 쓴다고 보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며 "시장은 결국 열릴 것으로 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 사이 현재 지적되는 여러 기술적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고 완성도를 높여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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