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주주환원이 끌어내린 환율…‘강한 원화’ 경제 판도 바꾼다

  • 가
  • 가
김남규 기자

달러 뭉치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반도체가 주가에 이어 환율까지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주주환원으로 달러 매도 가능성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340원선까지 내려왔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기름값과 수입물가를 낮추는 반면 금과 가상자산, 해외주식의 원화 환산 가격에는 하락 압력을 줄 수 있다. 물가 안정이 시장금리와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지면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면 수출기업에는 원화 환산 실적 감소라는 부담이 생긴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9원 내린 1340.5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2024년 10월 4일 1333.7원 이후 약 23개월 만의 최저다. 장중에는 1334.7원까지 떨어졌다.

주목할 점은 달러 자체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오후 3시37분 기준 99.09로 전 거래일보다 올랐다. 미국의 8월 비농업 신규 고용도 12만7000명 증가해 시장 예상치 5만명을 크게 웃돌았다. 달러 강세 재료에도 원화가 더 강해진 것이다.

◇삼성·하이닉스 주주환원, 환율 끌어내렸다

최근 환율 하락 배경으로는 수출기업의 네고(달러 매도) 물량과 함께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에 따른 환전 기대가 꼽힌다.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 자금도 달러 공급 요인이다.

두 회사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을 확대하려면 상당한 원화 자금이 필요하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 일부를 원화로 바꿀 경우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공급이 늘고 원화 수요가 증가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앞서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주환원을 고려해 원·달러 환율의 1차 지지선을 1340~1350원으로 제시했다. 환율은 이미 이 수준까지 내려왔다.

환율 하락이 추가 달러 매도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환율이 더 내려가기 전에 달러를 원화로 바꿔두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달러 매도가 이어질 경우 환율이 단기적으로 13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거론한다.

다만 두 회사의 주주환원 금액 전체가 달러 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유 원화나 국내 영업에서 발생한 현금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외국인 주주가 배당금을 다시 달러로 환전해 해외로 가져갈 경우 환율 하락 효과가 일부 상쇄될 수 있다.

◇기름값엔 호재, 금·코인엔 ‘환율 복병’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수입물가다. 한국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와 원자재를 달러로 사들인다. 국제유가가 같더라도 환율이 내려가면 원유 수입에 필요한 원화 비용이 줄어든다.

정유사의 원유 도입 비용이 낮아지면 시차를 두고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도 하락 압력이 생긴다. 원자재와 중간재 가격까지 낮아지면 기업의 생산비와 소비자물가 부담도 줄어든다.

항공·여행·음식료 등 달러 비용 비중이 높은 업종에도 원화 강세는 호재다. 해외여행과 유학, 해외직구 비용 역시 낮아진다.

반대로 달러 자산 보유자에게는 부담이다. 국내 금 가격은 국제 금값과 환율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국제 금값이 그대로라면 환율이 1340원에서 1300원, 1200원대로 내려갈수록 원화 기준 금 가격에는 하락 압력이 생긴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도 비슷하다. 달러 기준 가격이 같다면 원화가 강해질수록 국내 원화 가격은 낮아진다. 미국 주식 역시 주가가 올라도 환율이 크게 떨어지면 국내 투자자의 원화 환산 수익률은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앞으로 해외 자산을 사려는 투자자에게는 유리하다. 같은 원화로 더 많은 달러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집값엔 호재, 수출기업엔 부담↑

원화 강세의 파장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로도 이어진다. 환율 하락으로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가 안정되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환율 하락→수입물가 안정→물가 부담 완화→시장금리 하락’의 흐름이 나타날 경우 은행채와 금융채 금리를 거쳐 주택담보대출 금리에도 하락 압력이 생긴다.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부동산 시장에는 우호적인 요인이다.

다만 가계대출과 집값 상승세가 강한 상황이라면 환율과 물가가 안정됐다는 이유만으로 기준금리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원화 강세가 모든 기업에 호재인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은 환율이 내려갈수록 달러로 벌어들인 매출과 이익의 원화 환산액이 줄어든다.

원화가 경쟁국 통화보다 빠르게 강해지면 수출 가격 경쟁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반도체처럼 업황 자체가 강하고 제품 가격이 오르는 산업에서는 환율 하락의 부정적 효과를 업황 개선이 상쇄할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달러 공급이 기업의 주주환원과 환전 등에 따른 일시적 요인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향후 대미 투자와 해외주식 투자 등 달러 수요가 다시 늘어나면 환율이 1370~1400원 수준으로 반등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남규 기자
ngk@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