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제한 5만원, 판매자는 언제 받을까?…‘정산’의 세계 [트렌D]

[사진=쿠팡]
[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온라인 쇼핑몰에서 5만원짜리 상품을 하나 주문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카드번호를 입력하거나 간편결제 버튼을 누르면 결제는 몇 초 만에 끝나게 될텐데요. 그렇다면 내가 낸 5만원은 판매자에게도 곧바로 들어갈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소비자가 결제한 시점과 판매자가 실제 판매대금을 받는 시점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과 플랫폼에 따라 정산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플랫폼마다 정산 방식이 다른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쿠팡이나 컬리처럼 상품을 직접 사들여 재고와 판매까지 책임지는 ‘직매입’과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네이버·11번가·G마켓 등 ‘오픈마켓’은 애초에 돈이 오가는 구조가 다릅니다. 직매입 거래의 현행 법정 대금 지급기한은 최대 60일인 반면, 오픈마켓들은 대부분 이보다 훨씬 짧은 자체 정산주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픈마켓에서는 소비자가 누르는 ‘구매확정’ 버튼이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결제를 마쳤다고만 해서 판매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상품을 제대로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판매가 확정되죠. 네이버의 경우 빠른 정산은 배송 시작 다음 날, 일반정산은 구매확정 다음 날 이뤄집니다. 11번가도 구매확정 후 2영업일 만에 판매대금 전액을 지급합니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물건을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구매확정’을 누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플랫폼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구매가 확정되는 장치를 두고 있어요. 통상 상품 판매 후 7~10일 안에 자동 구매확정이 이뤄지며, 배송이나 상품에 문제가 생겨 교환·반품이 필요한 경우에는 구매확정을 미루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소비자가 결제한 순간부터 판매자에게 돈이 들어가기까지는 ‘결제→배송→구매확정→정산’이라는 몇 단계가 존재합니다. 여기에 직매입인지 오픈마켓인지, 각 플랫폼이 어떤 정산 방식을 채택했는지에 따라 실제 대금을 받는 시점도 달라집니다. 최근 정부와 국회가 손보려는 것도 바로 이 ‘돈이 이동하는 시간’입니다.
◆판매대금 ‘60일→35일’…왜 줄이려 할까요=최근 ‘이 돈이 이동하는 시간’을 둘러싸고 유통업계가 시끄러워졌는데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지난 1일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최대 60일에서 35일로 줄이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개정안은 지난 3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문턱까지 넘었습니다. 이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심사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매출 1000억원 이상 유통업체의 직매입 대금 지급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최대 60일에서 35일로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특약매입·위수탁·매장임대 거래 역시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이던 지급기한을 20일로 단축합니다.
취지는 어렵지 않습니다. 상품을 넘긴 납품업체가 돈을 더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를 겪으며 판매대금이 장기간 플랫폼에 묶이는 데 대한 경계도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대금을 빨리 주도록 하면 좋은 것 아닐까요? 여기서 문제가 조금 복잡해집니다.
특히 직매입은 플랫폼이 판매자의 상품을 대신 팔아주고 수수료를 받는 거래와 다릅니다. 유통업체가 상품을 아예 사들여 소유권을 갖고 재고와 판매 위험까지 부담합니다. 아직 팔리지 않은 물건의 대금을 먼저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셈입니다.

[사진=컬리]
◆“빨리 주세요”가 오히려 판로를 좁힌다면=법안이 소위를 통과하자 유통·플랫폼 관련 단체들은 잇달아 우려를 내놨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유통 대기업의 자금 부담’만을 이유로 들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중소 유통업체와 입점업체, 스타트업의 판로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한국중소상공인협회는 지급기한을 일률적으로 단축하면 중소 유통업체와 플랫폼의 운전자금 부담이 커지고, 이들이 매입 규모를 보수적으로 운영하면서 중소 제조사와 납품업체의 발주량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해외 플랫폼과 국내 업체 간 규제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홈플러스 사례를 들었습니다. 홈플러스 사태의 본질은 정산주기가 아니라 경영 악화에 있다는 입장입니다. 지급기한을 대폭 줄여 유통업체의 경영 부담을 키울 경우 그 피해가 다시 납품업체에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역시 납품업체의 유동성을 개선한다는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직매입 업체의 운전자금 부담이 늘면 신규 상품이나 스타트업·신생 브랜드 제품의 매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거래 방식과 사업자 규모, 재무 여건을 고려한 적용 방식과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제안입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KOLSA)도 비슷한 우려를 내놨습니다. 운전자금이 부족해지면 유통업체가 판매가 불확실한 신상품과 회전율이 낮은 중소기업 상품보다 대기업 인기상품 등을 우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작 보호하려던 신규·중소 납품업체가 거래 축소의 부담을 먼저 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품이나 소비자 선택권 문제도 제기됩니다. 온라인 유통은 반품·환불과 검수 등을 거쳐 매출이 확정되는 만큼 지급기한만 앞당길 경우 유통업체가 반품 위험이 낮은 상품을 선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논쟁의 핵심은 ‘판매자에게 돈을 빨리 주는 것이 좋은가’가 아닙니다. 얼마나 빨리 지급하도록 해야 판매자를 보호하면서도 그 부담이 다시 상품 매입 축소나 판로 감소로 돌아가지 않느냐에 가깝지요.
우리가 몇 초 만에 결제한 5만원이 판매자의 통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 숨어 있습니다. 판매대금을 신속하게 돌려주는 것과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번 논쟁은 결국 정산의 ‘속도’와 ‘안정성’ 사이에서 어느 지점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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