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두드린 美 문 열렸다…K9, 김승연 뚝심·김동관 승부수 '결실'(종합)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 [사진=한화그룹]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2017년 10월 국산 K9 자주포 한 대가 1만㎞를 건너 미국 워싱턴에 도착했다. 미국 지상군협회(AUSA) 전시회에 실물 K9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실물 전시조차 어려웠던 국산 자주포가 미 육군에 납품되는 것은 상상 속 이야기였다. 그로부터 9년 후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합심한 결과 K9은 당당히 미 육군의 선택을 받게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자회사인 한화디펜스USA는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K9 Mobile Howitzer∙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미 육군에 따르면 계약 금액은 1억30만2961달러(약 1417억원)다. 누적 액면가는 2억6290만3274달러(약 3715억원)다. 약 4년에 걸쳐 최대 18대 차륜형 자주포 시제품을 개발·시험할 예정이며 우선 6대를 신속 공급하고 추가 12대 옵션을 포함했다.
◆美 문턱 높았지만 포기 없었다…1만㎞ 건너 시작된 도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 육군과 K9MH 시제품 공급 계약을 따내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K9은 이미 해외에서 성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세계 최대 방산시장인 미국 문턱은 높았다.
K9 자주포는 북한의 장사정 화포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 개발을 시작해 1999년 육군·해병대에 처음 배치됐다. 2001년 튀르키예 수출을 시작으로 폴란드·인도·핀란드·노르웨이·에스토니아·호주·이집트·루마니아까지 진출했다. 현지 생산분을 포함하면 국내외에서 2500문 이상 생산·운용될 예정이며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궤도형)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세계 점유율 1위 자주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시장 문턱은 높았다. 미 육군은 이미 M109 팔라딘 자주포를 지속적으로 개량해 사용하고 있었고 자체 차세대 자주포 개발도 추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당장 계약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매년 한국에서 미국까지 실물 장비를 옮겨 K9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기회는 미 육군 전략이 바뀌면서 찾아왔다. 미 육군은 자주포 사거리를 30㎞에서 70㎞로 늘리는 사거리연장형 화포(ERCA)를 자체 개발했지만 최대사거리 구현과 포신 마모 등 문제로 2024년 사업을 중단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 사이 미국에서 K9 성능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2022년 9월 유마 사격장 시험에서 미국산 M795 등 다양한 포탄과 호환성을 확인했다. 당시 외국 장비로는 처음 XM1113 로켓보조탄을 발사해 53㎞ 사거리를 기록했다. 2024년 4월에는 노르웨이형 K9 비다르로 미국 정밀유도포탄 엑스칼리버를 발사해 약 50㎞ 거리에서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미 육군은 2024년 8월 방산업계를 상대로 정보요청서(RFI)를 보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해 독일 라인메탈, 영국 BAE시스템즈, 제너럴 다이나믹스, 이스라엘의 엘빗 등의 미국법인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미 육군의 차세대 기동전술화포(MTC) 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사격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김승연 '사업보국' 뚝심 이은 김동관…"반드시 미국시장 진출한다"
9년간 이어진 미국 도전 밑바탕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강조해 온 '사업보국' 철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방산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업으로 보고 내수에 머물지 않는 글로벌 수출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해왔다. 특히 김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술을 확보하라"고 주문하며 기술 경쟁력을 강조해왔다.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기조를 이어 미국 자주포 시장 변화에 주목했다.
세계 자주포 시장은 궤도형과 차륜형으로 나뉜다. 전 세계에서 운용 중인 자주포 대다수는 궤도형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차륜형 가치가 부각됐다. 포병전력에도 빠른 이동과 장거리 전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 육군도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새 궤도형 자주포보다 검증된 기술을 활용한 기동성 높은 화포에 관심을 돌렸다.
김 수석부회장은 미군의 새로운 자주포 수요가 커질 것으로 판단해 선제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반드시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관련 부서는 2024년 3월 미 육군이 차륜형 자주포 개발계획을 추진한다는 점을 포착했다. 최고경영진은 글로벌 방산 기업 출신, 미국 정부 인사 출신들을 연이어 영입하며 미국 조선·자주포 시장 진출을 위한 선제적 인사를 진행했다.
이어 2024년 말부터 30개월간의 개발 여정이 시작됐다. 개발 착수 6개월 만인 2025년 상반기 기본·상세설계를 마쳤다. 올해 1분기에는 첫 K9MH 시제품까지 완성했다. 기존 K9을 수십 년간 개발·생산하면서 쌓은 기술을 활용하면서 개발 착수부터 실물 제작까지 걸린 시간을 약 1년으로 줄였다.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MH는 안두릴·라인메탈 등 글로벌 굴지의 방산기업들을 제치고 미 육군과 시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국산 무기체계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계약을 맺은 기록을 세웠다. K9MH는 미 육군 장병이 직접 운용하며 성능과 신뢰성·군수지원 능력을 검증받는다. 전력화 승인을 받으면 일부 부대에서 M777 견인포를 대체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K9은 미래 전장 변화와 국군·수요국의 요구사항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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