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도배 새로 해놓고 이사 가세요”…세입자, 어디까지 물어줘야 하나

김남규 기자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이미지.

벽지 변색·장판 눌림 등 ‘통상손모’는 원칙적으로 임차인 책임 아냐

고의·과실로 훼손했다면 배상…원상회복 특약도 내용도 따져봐야

[디지털데일리 김남기자] “벽지가 낡았으니 도배를 새로 해놓고 나가세요.”

전·월세 계약이 끝나 이사를 앞둔 세입자라면 한 번쯤 걱정하는 문제다. 집주인이 벽지나 장판 교체 비용을 요구할 경우 어디까지 물어줘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상적으로 살면서 생긴 벽지 변색이나 장판 눌림 등까지 세입자가 모두 배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9일 부동산 투자·컨설팅 전문기업 밸류업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은 원칙적으로 빌린 집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의무가 있다. 민법은 임차인이 임대차 목적물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입주 당시와 똑같은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생긴 흔적인지, 세입자의 고의나 과실로 생긴 훼손인지다.

벽지가 햇빛 등에 노출돼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거나 가구를 놓아 장판에 눌린 자국이 생긴 경우, 바닥재가 생활 과정에서 마모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손상은 ‘통상손모’로 본다.

법원도 별도의 특약이 없다면 통상손모에 따른 원상회복 비용까지 세입자가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 임차인은 집을 사용하는 대가로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모나 노후화까지 세입자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세입자의 고의나 부주의로 집을 훼손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려 바닥을 깨뜨리거나 반려동물이 벽지나 문을 심하게 훼손하는 등 통상적인 사용 범위를 넘어선 손상이 발생했다면 세입자에게 원상회복이나 손해배상 책임이 생길 수 있다.

계약서에 적힌 ‘원상회복 특약’도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퇴거 시 원상회복한다’는 문구가 있다고 해서 도배와 장판 교체 비용을 무조건 세입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준형 베률업이노베이션 대표.

밸류업이노베이션이 소개한 서울중앙지법 판결에서는 계약서에 ‘퇴실 시 원래의 도면 상태로 원상회복한다’는 특약이 있었지만, 법원은 이 문구만으로 통상손모까지 임차인이 보수하기로 약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계약 단계에서 ‘퇴거 시 도배·장판을 임차인 비용으로 교체한다’는 식으로 대상과 부담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원상회복 특약이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무엇을, 어느 범위까지 세입자가 부담하기로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상가 임차인은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직접 설치하지 않은 시설이라도 계약 내용에 따라 철거 책임을 질 수 있어서다.

대법원은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커피전문점 시설을 넘겨받아 사용한 임차인에게 계약 종료 후 해당 시설을 철거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계약서에 원상회복 의무가 명시돼 있었고 현 임차인이 이전 임차인으로부터 영업을 넘겨받았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따라서 기존 상가를 권리금 등을 주고 넘겨받을 때는 이전 임차인이 설치한 인테리어나 시설물을 누가 철거할 것인지 계약 단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원상회복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전대차라면 책임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임차인이 다시 제3자에게 집이나 상가를 빌려준 경우에는 누가 시설을 훼손했는지뿐 아니라 임차·전차 기간과 각각의 계약서에 담긴 원상회복 특약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분쟁을 피하려면 입주할 때부터 집 상태를 기록해 두는 게 좋다. 벽지와 장판, 싱크대, 창틀 등 주요 시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두면 퇴거할 때 기존 손상인지 거주 중 발생한 훼손인지를 가리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계약할 때는 원상회복 특약의 범위도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남규 기자
ng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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