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그로신 홍은영판 삽니다” 20년 전 만화책 역주행…희귀 초판 100만원 호가

장주영 기자

번개장터(왼쪽)에 게시된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 시리즈 상품 게시글과 당근에 그리스로마신화의 약자를 검색한 화면 [사진=번개장터, 당근 갈무리]

[디지털데일리 장주영 기자] 영화 한 편이 20여년 전 어린이들의 책장까지 다시 열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흥행하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중고로 다시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 일부 초판 시리즈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되는 등 콘텐츠 흥행이 단종·희귀 상품의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19일 리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당근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도서의 검색과 거래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화와 인물, 방대한 세계관을 보다 쉽게 이해하려는 수요에 과거 읽었던 책을 다시 소장하려는 소비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당근에서 영화 개봉 전후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2주간 ‘그리스 로마 신화’ 도서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실제 거래량도 62% 늘었다.

고전 원전을 직접 찾는 움직임은 더욱 뚜렷했다. 같은 기간 그리스 신화의 영웅 서사를 다룬 ‘일리아스’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83% 급증했다. 영화 관람을 계기로 등장인물과 배경을 찾아보려는 관심이 만화부터 고전문학까지 관련 도서 전반으로 번진 셈이다.

중고시장에서는 어린 시절 읽었던 특정 판본을 다시 찾으려는 수요가 눈에 띈다. 당근 바로배송 상품 가운데 초판 희귀본인 ‘그리스 로마 신화’ 1~17권 세트는 85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번개장터 플랫폼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카테고리 등록 상품이 277개에 달하며 20권 전권 세트를 100만원에 판매하는 게시글도 올라와 있다. 중고나라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 검색 연동 상품은 462개로, 최고 가격 95만원에 시리즈 전권을 판매하고 있다.

중고나라에 그리스로마신화를 검색한 화면 [사진=중고나라 갈무리]

특히 같은 그리스 로마 신화라도 어떤 작화가가 참여했는지에 따라 수요가 갈린다. 1권부터 18권까지 시리즈의 그림을 맡았던 홍은영 작화가 판본을 찾는 독자들이 많다. 시리즈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작화가가 교체되면서 어린 시절 홍 작화가의 그림체로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 사이에서 초기 판본을 소장하려는 수요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어떤 판본이냐’가 중고 가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더 이상 새 상품으로 동일한 구성의 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 흥행을 계기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자 희귀 초판 세트 가격이 치솟고 있다. 번개장터와 당근에는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를 담은 홍은영 작가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 18권을 구한다는 글도 다수 게시됐다.

실제 중고 거래 게시글의 대부분은 상품명과 설명란에 ‘홍은영’, ‘홍은영작가’라는 키워드를 포함해 소구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판매자는 “홍은영 작가의 18권이 없어 새로 구매해 채웠다”며 특정 작화가의 판본을 찾아 시리즈를 완성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렇듯 콘텐츠를 계기로 과거 상품이 다시 주목받는 현상은 리커머스 시장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등 새로운 이슈가 등장하면 관련 상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이미 해당 상품을 보유한 이용자는 판매자로 나설 수 있다. 별도의 상품 생산이나 재출시를 기다리지 않아도 개인이 보유한 물건이 곧바로 시장에 공급되는 구조다.

특히 단종된 책이나 과거 굿즈처럼 새 상품 시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제품일수록 리커머스의 역할이 커진다. 어린 시절 즐겼던 만화나 캐릭터, 게임 등이 새로운 콘텐츠를 계기로 다시 화제가 되면 당시 상품을 직접 찾아 소장하려는 수요가 생기고, 희소한 제품은 높은 가격에도 거래된다.

리커머스가 유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유행이 발생할 때 과거 상품을 다시 끌어내는 시장으로 기능하는 현상이다. 홍은영 작가의 초판본이나 그림체를 웃돈을 주고 구매하는 이유도 어린 시절 추억을 회상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결과다.

당근 관계자는 “영화 개봉을 계기로 원전과 맞닿은 고전문학부터 신화와 인물을 친숙하게 풀어낸 만화까지 함께 찾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하나의 문화 콘텐츠에서 시작된 관심이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을 환기하고 관련 도서를 가까운 동네에서 다시 발견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장주영 기자
jyjang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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