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스크칼럼] 무한 스크롤 만들어놓고 절제하라니

  • 가
  • 가
백지영 기자

[ⓒ 인스타그램]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이제 그만 봐."

청소년 자녀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10분만 더, 이것만 보고, 친구한테 답장만 하고. 그렇게 10분은 30분이 되고 어느새 한 시간이 된다. 옆에서 보면 답답하다.

도대체 왜 저걸 못 끄나 싶지만 사실 어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잠들기 전 잠깐 보려던 쇼츠가 한 시간을 잡아먹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열었다가 애초에 왜 열었는지도 잊기 일쑤다.

어른도 이기기 어려운 알고리즘과 중학생의 자제력을 맞붙이는 것부터가 불공정한 게임이다.

영상 하나가 끝나면 다음 영상이 저절로 재생된다. 화면을 아래로 밀면 콘텐츠는 끝없이 솟아난다.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은 알고리즘이 귀신같이 찾아준다. 이름부터 '무한 스크롤'이다. 무한히 보라고 만들어놓고 유한하게 보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아이들도 자신이 잘 끄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최근 발표한 조사에서 청소년 10명 중 4명은 일정 연령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을 제한하는 정책에 찬성했다. 계획보다 오래 SNS를 이용하거나 잠잘 시간을 넘겨서도 계속 사용하는 경험도 흔했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청소년 상당수는 접속 자체를 막는 것보다 플랫폼의 기능과 환경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무한 스크롤과 맞춤형 추천, '좋아요' 같은 사회적 반응, 자동재생 등이 이용시간을 늘린다고 봤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단순한 연령 제한에는 구멍이 많다. 부모나 다른 사람의 계정을 빌리거나 규제받지 않는 플랫폼으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문을 잠그면 아이들은 다른 문을 찾는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다. '아이들은 왜 SNS를 끄지 못하나'가 아니라 'SNS는 왜 끄기 어렵게 만들어졌나'라고.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이 질문이 플랫폼 규제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메타는 미국 주정부들과 청소년 SNS 피해 소송을 끝내기 위한 최대 180억달러(약 25조원) 규모의 합의에 도달했다. 아직 법원의 승인이 남아 있지만 돈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합의 조건이다.

메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18세 미만 이용자에게 기본적으로 하루 2시간의 이용 제한을 두고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이용을 막기로 했다. 학교 시간대 알림도 제한한다. 연령 확인을 강화하고 비개인화 피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서비스 구조 자체도 손보기로 했다.

그동안 플랫폼 규제가 주로 "나쁜 콘텐츠를 보여주지 마라"였다면 이제는 "아이를 계속 붙잡아두도록 만들지 마라"로 한발 더 나간 셈이다. 미국 주정부가 문제 삼은 것도 청소년이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제품 설계였다. 규제의 칼끝이 콘텐츠에서 알고리즘과 제품 설계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정부가 청소년 SNS 규제 방안을 검토하고 국회에도 관련 법안들이 올라와 있다. 여기서 몇 살부터 SNS를 금지할 것이냐는 숫자 싸움에만 매달리면 과거 게임 셧다운제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다.

차라리 아이에게 제공되는 SNS를 다르게 설계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청소년 계정에는 추천 알고리즘의 강도를 낮추고 무한 스크롤과 자동재생을 제한하며 심야 알림을 끄는 식이다.

이는 비단 SNS만의 문제도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챗GPT로 수학 문제를 묻고 수행평가 아이디어를 얻으며 때로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오픈AI가 지난달 '청소년용 챗GPT(ChatGPT for Teens)'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18세 미만으로 확인되면 별도의 청소년 환경을 적용하고 민감한 콘텐츠에 더 강한 보호장치를 두며 휴식 알림이나 보호자용 이용시간 설정 등을 제공한다.

SNS든 AI든 결국 질문은 같다. 어른을 위해 만든 디지털 서비스를 아이에게 그대로 제공해도 되는가.

물론 아이에게 절제를 가르치는 것은 부모와 학교의 몫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이용자의 관심을 1초라도 더 붙잡기 위해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와 알고리즘을 동원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중학생에게 "네가 알아서 절제하라"고 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더구나 어른들조차 그 알고리즘 앞에서 번번이 진다. 무한 스크롤과 자동재생, 정교한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어놓고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적당히 하라고 말해왔다.

이제 "그만해"라는 말을 아이에게만 할 때는 지났다. 플랫폼에도 할 차례다.

백지영 기자
jyp@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