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품권 사면 대출해준다” 속았다간 피의자 된다…신종 보이스피싱 경보

김남규 기자

금융감독원 사옥 전경 [사진=금융감독원]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상품권 구매 실적을 쌓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며 저신용자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넘겨받은 뒤 이를 보이스피싱 피해금 세탁에 이용하는 신종 범죄 수법이 등장했다. 대출을 받으려다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넘겨준 사람도 자칫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가로챈 피해금을 대형마트 무인 키오스크에서 상품권으로 바꾼 뒤 현금화하는 신종 자금세탁 수법이 확인됐다. 금감원은 이에 소비자경보를 발령하고 금융소비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수법은 크게 세 단계다. 먼저 사기범들은 저축은행 등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해 신용점수가 낮아 제도권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이어 “카드 사용 실적이 없어 대출이 부결됐다”며 “상품권을 반복 구매해 실적을 쌓으면 대출 한도가 나온다”고 속인다.

이후 “상품권은 우리가 대신 사줄 테니 체크카드와 통장만 맡기라”고 요구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돈을 직접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잠시 맡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넘어간 계좌와 체크카드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대포통장으로 활용된다.

계좌를 확보한 범죄조직은 다른 피해자에게 “저금리 대환대출이 가능하다”며 접근한다. 피해자가 대환대출을 신청하면 기존 금융회사 직원을 사칭한 공범이 “기존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새 대출을 받으면 법이나 약정 위반”이라며 기존 대출 원금을 즉시 갚으라고 압박한다.

이때 피해자에게 안내하는 상환 계좌가 앞서 확보한 개인 명의 계좌다. 사기범들은 “법 위반 건이라 기록을 남기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금융회사 명의가 아닌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내도록 유도한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해 피해자를 주변의 도움으로부터 고립시키기도 한다.

피해금이 입금되면 수거·인출책은 곧바로 대형마트 무인 키오스크 등을 찾아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다. 상품권은 다시 현금으로 바뀌고, 전달책을 거쳐 가상자산으로 환전된 뒤 해외 총책에게 송금된다. 기존처럼 현금을 직접 인출하지 않고 상품권을 거쳐 돈을 세탁하는 방식이다.

특히 대출을 받으려다 통장이나 체크카드를 넘겨준 사람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체크카드 등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고 넘겼다면 사기죄 공범으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다.

금감원은 정상적인 금융회사는 대출 심사를 하면서 특정 물품의 구매 실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품권뿐 아니라 귀금속이나 외화 등 환금성이 높은 물품을 구매해 실적을 만들면 대출 한도가 늘어난다는 식의 안내 역시 사기라는 설명이다.

정상적인 대환대출 과정에서 개인 명의 계좌로 기존 대출 원금을 보내라고 요구하는 일도 없다. 정상적인 대환대출은 새로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가 기존 금융회사에 직접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금감원은 신종 자금세탁 수법을 차단하기 위해 대형마트 등 상품권 발행사와 협의해 무인 키오스크의 상품권 구매 한도를 낮췄다. 기존에는 한 번에 500만원까지 구매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1회와 하루 구매 한도를 각각 100만원으로 제한한다. 구매 한도 규제를 피해 다른 유통 경로로 범죄 수법이 옮겨가는 ‘풍선 효과’도 살펴볼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미 카드나 계좌를 넘겼다면 즉시 금융회사에 카드 분실·정지 신고를 하고 계좌 거래를 중지한 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상품권을 이용한 자금세탁의 경우 피해금이 불과 몇 분 안에 상품권으로 바뀔 수 있는 만큼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 즉시 경찰이나 금융회사 콜센터에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김남규 기자
ng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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