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표 던졌던 ‘크루서블’, 美선 직접 홍보…고려아연, 영풍·MBK 고발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 명칭과 표지를 사용해 미국 현지에서 행사를 연 영풍·MBK파트너스 측을 경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프로젝트 관련 6개 안건에 모두 반대표를 던지고 신주발행금지 가처분까지 신청했던 영풍·MBK 측이 최근 미국에서는 같은 프로젝트 명칭을 내걸고 대외 활동에 나선 것이 발단이 됐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최근 영풍·MBK 측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영풍·MBK 측이 미국 현지에서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과 표지를 사용하면서 마치 사업의 공식 추진 주체이거나 고려아연과 협력 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고려아연 측 주장이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서 추진하는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이다.
고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영풍·MBK 측의 미국 현지 활동이다. 영풍·MBK 측은 지난 7월 테네시주에서 주 정부 관계자와 지역사회 인사, 언론인 등을 초청해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주제로 리셉션을 연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에는 윤종하 MBK 부회장과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 등이 참석했다. 장 대표는 이 자리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의 기술이 프로젝트에 활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MBK 측은 행사 과정에서 ‘crucibleTN.com’이라는 별도 인터넷 도메인도 등록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이를 문제 삼았다.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과 협의 없이 프로젝트 명칭과 표지를 사용해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등을 상대로 활동하면서 사업 주체에 대한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고발은 고려아연 측이 혐의를 제기한 단계로, 실제 법 위반 여부는 향후 수사 과정에서 가려질 사안이다.
영풍·MBK 측은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이 등록상표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에 사업을 설명하고 지원 의사를 밝힌 것도 정당한 주주 활동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고발을 계기로 영풍·MBK 측이 지난해 프로젝트 추진 당시 취했던 입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영풍·MBK 측 추천 이사들은 미국 제련소 건설과 투자 유치, 합작법인 출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 프로젝트와 관련된 6개 안건에 모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MBK 측은 당시 6개 안건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거래 구조로 연결돼 있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반대하는 이상 나머지 안건에도 찬성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영풍·MBK 측은 이사회 표결에 이어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미국 제련소 투자 과정에서 추진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라는 게 당시 영풍·MBK 측 주장의 핵심이었다.
당시 프로젝트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표현도 강했다. 영풍·MBK 측은 프로젝트 발표 당일 배포한 자료에서 ‘아연 주권 포기’, ‘국익에 반하는 결정’,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 등에서는 미국 정부 등이 참여하는 투자 구조를 ‘야합’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당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영풍·MBK 측이 법원에 제시한 주장으로, 법원의 판단과는 구분된다.
영풍·MBK 측은 최근 당시 자신들이 반대한 것은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 자체가 아니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 투자 구조였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프로젝트 자체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편법적인 신주 발행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양측의 공방은 두 갈래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이사회 표결과 가처분 신청, 당시 발표 자료 등을 들어 영풍·MBK 측이 프로젝트 추진 전반에 반대해 왔다는 입장이다. 반면 영풍·MBK 측은 미국 제련소 건설 필요성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추진된 자금조달 방식과 투자 구조를 문제 삼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번 고발의 또 다른 쟁점은 미국 현지에서 사용한 프로젝트 명칭과 표지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의 활동이 프로젝트 추진 주체를 혼동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풍·MBK 측은 등록상표가 아닌 명칭을 최대주주가 사용해 사업을 설명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수사에서는 영풍·MBK 측의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과 표지 사용이 부정경쟁방지법상 문제가 되는지, 미국 현지 활동이 고려아연이 주장하는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 등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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