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사인 앨범 96만원? 살게요!”…‘한정 굿즈’ 찾아 한국행, 리커머스 뜬다 [인바운드 빅뱅]中

장주영 기자

정부가 방한 관광객 3000만명 시대를 목표로 인바운드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관광객 증가는 유통업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면세점 대신 편의점과 다이소를 찾고, 패키지보다 개별여행을 선호하며, 쇼핑의 무대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중고 플랫폼까지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데일리는 인바운드 3000만 시대를 앞두고 달라지는 외국인 소비 트렌드와 유통업계의 대응 전략, 관광 산업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류스톰 매장 내부 전경 [사진=장주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장주영 기자] “세븐틴 앨범 두 장이랑 사촌에게 줄 트와이스 굿즈를 샀어요.”

지난 7월30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인근 K-팝 리커머스 매장 ‘한류스톰’. 계산대 앞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 관광객 조이(21)는 세븐틴 중고 앨범 두 장과 트와이스 캔배지를 품에 안은 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필리핀 여행을 마친 뒤 귀국 전 한국에 들른 그는 “근처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다음 일정 전 꼭 구매하고 싶어서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4일 관광 업계에 따르면 방한 외국인들 사이 홍대와 합정 일대 K-팝 리커머스 매장에서 포토카드와 응원봉, 절판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 새로운 관광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K-팝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리커머스가 내국인 사이 발생하는 중고거래에 그치지 않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인바운드 산업으로까지 진화하는 모습이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팬덤 소비가 실제 방한으로 이어지고 한국에서 구매한 상품이 다시 해외 팬덤으로 유통되면서 관광과 수출을 연결하는 새로운 소비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류스톰은 온라인에서 포토카드 및 K-팝 굿즈 리커머스 쇼핑몰을 운영하는 ‘CS트레이딩’이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이다. 진열된 상품은 모두 직접 직원들이 구매해왔거나 개인에게 매입한 중고 굿즈다.

정윤식 CS트레이딩 팀장은 “매장을 찾는 손님의 거의 100%가 외국인”이라며 “홍콩과 대만, 중국, 일본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한류 스톰을 찾는 일평균 방문객은 30명 내외. 한 달로는 1000여명이 넘는다.

그는 “5년 넘게 운영해 온 온라인 플랫폼 ‘한류슈퍼스토어’를 이용하던 해외 고객들이 오프라인 매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방문한다”며 “실제로 가게를 찾아 한류스톰을 오려고 한국에 왔다고 설명하는 단골 고객도 있다”고 설명했다.

단골 고객들의 입소문은 다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다. 방문객들이 매장 사진과 구매 후기를 올리면 이를 본 해외 팬들이 한국 여행 계획에 매장을 추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진다.

한류스톰 매장 내부에 전시된 BTSX배스킨라빈스 협업 제품 [사진=장주영 기자]

리커머스 시장의 가장 큰 경쟁력은 빠른 트렌드 대응이다. 한류스톰은 인스타그램과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실시간으로 살펴보며 어떤 그룹의 인기가 높아지는지 분석한다. 컴백이나 콘서트, 팝업스토어, 럭키드로우 일정이 잡히면 직접 현장을 찾아 굿즈를 확보한다.

최근에는 스트레이키즈 콘서트를 앞두고 관련 굿즈가 가장 많이 팔렸다. 매대를 가득 채웠다던 상품은 취재 당시 4~5개만 남아 있었다.

BTS 응원봉도 마찬가지다. 정 팀장은 “이번 달에만 100개 이상 들여왔는데 현재 남은 재고는 4개 정도로 손에 꼽는다”며 “매입 가격이 높아져 판매가도 올랐지만 관광객들은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생산이 끝난 상품도 다시 시장에 나온다는 점 역시 리커머스만의 경쟁력이다. 절판된 포토카드와 해체 그룹 굿즈, 사인 앨범은 팬들 사이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전시용으로 들여왔던 BTS ‘아리랑’ 사인 앨범은 결국 한 팬에게 96만원에 판매됐다. 전 세계에 한 장뿐인 사인 폴라로이드 역시 수십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거래됐다.

배스킨라빈스와 BTS의 협업 피규어, BTS 보라 에디션 오레오, 칠성사이다 협업 제품 등 생산이 종료된 한정판 역시 해외 팬들이 꾸준히 찾는 품목이다. 정 팀장은 “팬들은 공식 굿즈뿐 아니라 과거 협업 상품까지 수집한다”며 “리커머스는 절판된 상품도 유통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한류스톰 매장 내부에 전시된 포토카드 월 앞에서 방문객이 상품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장주영 기자]

이 같은 변화는 K-팝 팬들의 여행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공연이나 관광이 여행의 목적이고 쇼핑은 부수적인 일정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희귀 굿즈를 구매하거나 리커머스 매장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방한 목적이 됐다.

이를 위해 매장도 굿즈 판매를 넘어 팬 경험을 강화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중이다. 원하는 포토카드를 검색할 수 있는 태블릿을 설치했고, 매장에 없는 상품도 주문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팬들은 이곳에서 포토카드를 구경하고 정보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교류한다. 팬들의 ‘커뮤니티’ 공간 역할이 되는 셈이다.

정 팀장은 “매장에 앉아 포토카드 바인더를 펼치고 어떤 카드가 언제 나온 것인지 이야기하고 즐기다 가는 팬들이 많다”고 전했다. 리커머스가 하나의 관광 콘텐츠가 된다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이다.

업계는 K-팝을 기반으로 한 리커머스가 관광과 수출을 동시에 이끄는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해외 팬들은 한국에서 굿즈를 구매해 자국으로 가져가고 이를 다시 팬덤 내에서 거래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재유통한다. K-팝 팬덤이 만들어낸 소비가 방한 관광을 유도하고, 다시 글로벌 유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중이다.

윤혜진 경기대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는 K-팝 리커머스 매장은 이제까지 조명되지 못했던 새로운 산업 중 하나로 글로벌 팬덤을 끌어들이는 관광 소비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K-팝 팬덤이 두터운 국가의 관광객들은 콘서트나 유학을 계기로 한국을 찾으면 자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이나 시즌이 지난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리커머스 매장을 필수 코스로 방문하기도 할 것”이라며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일종의 ‘성지순례’ 공간으로도 인식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K-팝 팬들의 방한 여행은 팬 이벤트나 공연 관람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공연 전후에는 기획사 사옥이나 촬영지, 굿즈숍 등을 찾는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며 “팬덤은 목적성이 가장 뚜렷한 소비자인 만큼 리커머스 상품들로 소비를 촉진하고 관광객 유치까지 겨냥한다면 새로운 인바운드 전략 산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장주영 기자
jyjang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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