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전문가기고] 산업 가치 향상을 위한 디지털 트윈 확장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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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기자

오병준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 한국지사장

산업계에서 디지털 전환은 최근 몇 년 사이 단순한 비전을 넘어 전략적 필수 과제로 자리 잡았다. 기업은 갈수록 고도화되는 고객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업무와 생산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동시에, 빠르게 증가하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하고, 통합된 디지털 생태계 안에서 제품과 생산의 전체 수명주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투자는 견고한 데이터 기반과 연결된 워크플로우를 구축하고, 산업용 AI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환경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그러나 초기 기술 도입에서 전사 차원의 디지털 생태계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기적 접근과 기업이 지향하는 장기적 비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의 즉각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향후 더 큰 규모의 확장과 고도화된 역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른바 ‘크게 꿈꾸되, 작게 시작하라(Dream big, start small)’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처음부터 조직 전체를 한 번에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가치가 분명한 영역에서 시작해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업이 초기의 망설임을 극복하고 디지털 전환을 향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도록 돕는다.

◆ 디지털 트윈과 산업용 AI를 먼저 도입한 기업들의 공통점

디지털 전환에 먼저 착수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시장을 선도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이들은 디지털화를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로 인식한다. 각자의 산업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투입한다.

그러나 아무리 의지가 강한 기업이라도 도입 과정에서는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과제는 개별 도구를 기존 워크플로우 및 프로세스와 어떻게 통합하고, 하나의 유기적이고 생산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

실제로 기업들이 기술 도입 이후 추가적인 자문을 구하는 이유도 특정 소프트웨어의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여러 기술과 도구를 기존의 업무 환경에 연결하고, 부서 간 데이터와 프로세스가 단절되지 않도록 통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디지털 전환의 진정한 가치는 개별 기술의 기능보다 이들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 단계적으로 높이는 디지털 트윈 성숙도

디지털 전환이 제공하는 수많은 가능성은 처음 시작하는 기업에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조직 전체를 한 번에 디지털화하려 하기보다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출발점은 가치가 분명하고 범위가 명확하게 정의된 활용 사례여야 한다. 기업은 작은 규모에서 빠르게 성과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용 범위와 기술 역량을 단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성과를 축적하면 조직과 구성원 역시 기술과 함께 성장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에 회의적이었던 구성원도 디지털화된 환경에서 2~3년간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고 효과를 경험한 뒤에는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생산과 자동화 업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자주 선택하는 출발점 중 하나는 가상 코드 검증(virtual code validation)이다. 엔지니어는 프로그래머블 로직 컨트롤러(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PLC) 코드를 실제 장비에서 직접 시험하는 대신, 장비의 가상 모델을 대상으로 검증한다. 이는 비교적 구축이 간단하면서도 즉각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활용 사례다. 실제 장비가 준비되기 전에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어 현장 테스트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이후 적용 범위를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한다.

기업은 가상 코드 검증을 시작으로 가상 사전 인수 테스트(virtual pre-acceptance testing), 가상 커미셔닝(virtual commissioning), 즉 가상 시운전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나아가 아직 실제로 제작되거나 인도되지 않은 장비의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고객과 작업자를 미리 교육하는 단계까지 발전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러한 다음 단계를 기술이 현장에 안착해 실질적인 성과가 확인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한다. 하나의 활용 사례가 가치를 창출하기 시작하면, 동일한 기술과 역량을 적용할 수 있는 업무 흐름의 전후 단계와 인접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게 된다.

이러한 단계적 확장 방식은 국내 산업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계열 SK에너지의 울산CLX는 2019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설비 관리에 필요한 1,00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했으며, 이후 AI와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스마트플랜트를 고도화해 왔다. 적용 범위도 하나의 활용 사례에 머무르지 않고 공정 운전과 설비 관리, 안전 분야로 점차 확대됐다. 공정 자동운전과 AI 기반 고급제어, 설비 이상 예측, 통합 안전 관리 등의 과제를 연계함으로써 플랜트 전반의 운영 효율성과 의사결정 수준을 높이고 있다. 이는 디지털 트윈이 특정 설비나 개별 프로젝트를 위한 기술을 넘어, 기업 전반의 혁신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AI가 확대하는 디지털 트윈의 가능성

앞으로 디지털 트윈의 발전을 이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AI가 될 것이다. AI는 디지털 트윈과 경쟁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트윈의 활용 범위와 역량을 더욱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AI가 가져올 가장 즉각적인 변화는 복잡한 시뮬레이션과 엔지니어링 도구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이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계의 의도와 목표 동작을 자동화 엔지니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방대한 문서를 작성하고 반복적으로 의견을 교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거나 서로 다른 전문 분야 사이의 표현 방식 차이로 인해 중요한 맥락이 누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AI 기반 에이전트가 엔지니어링 워크플로우에 내재되면, 이전에는 인접 분야의 전문성이 있어야만 수행 가능했던 업무에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기계 엔지니어는 AI의 도움을 받아 자동화 도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자동화 엔지니어는 복잡한 시뮬레이션 환경을 더욱 손쉽게 다룰 수 있게 된다. 지능형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전문 분야 간의 지식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다. 이는 전문 인력을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성이 더 넓은 업무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트윈과 AI를 활용한 제조 혁신이 확대되고 있다. LG화학은 주요 설비의 이상을 사전에 예측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고 있으며, 온도·압력·유량 등 공정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품질과 공정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이와 별도로 사내 AI 분석 플랫폼을 활용해 역삼투압(RO) 멤브레인 생산 공정의 최적 조건을 도출했으며, 이를 통해 최상위 등급 제품의 생산 비율을 4배 이상 높이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사례는 디지털 트윈과 AI가 설비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생산 현장의 품질 향상과 공정 최적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가상 세계에서 산업용 AI를 훈련하다

산업용 AI와 디지털 트윈은 서로의 가치를 높이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한다. 고충실도 가상 환경은 AI 알고리즘을 실제 생산 환경에 적용하기 전에 미리 훈련하고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기계나 생산 공정을 가상으로 구현한 모델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훈련하면, 실제 하드웨어가 제작되거나 생산 설비가 구축되기 전부터 학습을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실제 생산 환경에서 AI 모델이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또한 디지털 트윈은 AI 알고리즘을 안전하게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실제 생산 설비에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곧바로 시험하면 품질 저하나 설비 중단, 안전 문제와 같은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가상 환경에서는 다양한 조건과 예외 상황을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알고리즘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식음료, 소비재, 제약처럼 제품 품질과 공정 무결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산업에서는 이러한 검증 과정이 필수적이다. AI 알고리즘이 실제 생산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가상 환경에서 동작과 성능을 충분히 검증해야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 미래를 위한 디지털 트윈의 확장

디지털 트윈과 AI의 융합은 산업 기술의 향방을 좌우할 핵심 흐름 중 하나다. 이미 디지털 전환을 시작한 기업은 기존의 성과를 기반으로 활용 사례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별 솔루션과 업무 프로세스 사이의 통합 수준을 심화하고, 디지털 트윈을 제품과 생산 시스템의 전체 수명주기 전반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아직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지 않은 기업이라면 방향은 분명하다. 처음부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가치가 명확한 활용 사례를 선택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을 세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규모라도 실제적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한 단계씩 성과와 경험을 축적한다면 작은 시작은 더 넓은 적용과 고도화된 역량으로 이어진다.

크게 꿈꾸되, 작게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여정이 지속될 때 디지털 트윈은 단순한 디지털 모델을 넘어 산업용 AI와 연결된 기업 혁신의 핵심 기반으로 발전하고, 궁극적으로 실질적인 산업 가치와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

오병준/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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