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피지컬AI 시동下] DX 정책 한계 되풀이 하나… 과기부·산업부 정책 분산 우려도

오병훈 기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6월29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전북·경남 거점 피지컬AI 실증 사업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 설계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비판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겉으로는 ‘협력’을 표방하고 있지만 달리 보면 정책 의사결정의 ‘분산’ 문제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피지컬AI 전략 정책을 추진하면서 첫 본사업인 ‘2026년 경남·전북 AX 연구개발사업’에만 1조4000억원, 향후 추가적인 사업을 통해 총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규모 사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사업의 ‘의사결정(거버넌스)’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수 기업체가 각기 다른 분야 사업에 참여하기 때문에 명확한 사업 방향이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복합적인 기술 연구가 긴밀하게 연계돼야 하는 피지컬AI 기술 특성상 불분명한 거버넌스는 정책 방향성을 잃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물론 과기정통부는 ‘피지컬AI 얼라이언스’으로, 산업부는 ‘맥스(M.AX) 얼라이언스’ 등 협의체를 통해 국내 피지컬AI 전략 방향을 종합하고 조율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주관 부처가 둘이라는 점, 각 얼라이언스 참여 기업들도 다양한 이해 관계에 따라 합류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무 차원 거버넌스 규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DX 한계 되풀이 우려…과기부·산업부 정책 추진력 산개 우려도

엄밀히 말해 피지컬AI는 과거 DX전략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AI 모델이 DX에서 부족한 정교함을 채워주는 흐름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데이터를 수집·정제’하고 ‘이기종 로봇 간의 호환 문제를 해결’하는 큰 목표는 이전 DX에서도 핵심으로 다뤄온 내용이다.

이에 기존 제조 DX 정책의 한계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스마트공장, 제조 데이터, 로봇 보급, AI 바우처 등 다양한 디지털전환 정책이 추진됐다. 이를 통해 중소·중견 제조기업의 기초 전산화와 설비 데이터 수집 기반은 일정 부분 확대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시스템은 들어왔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는 제조실행시스템(MES), 전사적자원관리(ERP), 창고관리시스템(WMS), 감시제어시스템(SCADA), 로봇 제어기 등이 각기 다른 벤더와 규격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이를 시스템통합(SI) 방식으로 얽어 쓰고 있지만, 공장 전체 데이터를 AI가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제어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기존 DX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 또한 전북·경남 사업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이기종 상호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SI 체계 개발 등 과제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초 연구 단계에만 머무는 과제들이 대부분이라 과거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해당 프로젝트를 넘어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 내 피지컬AI 전략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부처별로 파편화된 정책 결정 구조가 사업 추진 동력을 저해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구상은 연구개발(R&D)은 과기정통부가 주관하고 이를 현장에 확산시키는 것은 산업통상부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분산된 정책 의사결정 아래서 유기적인 기술 확산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DX 공급 정책에서도 양적 확산에만 치중되는 한계를 경험해 놓고선 피지컬AI에서도 정책 주관 부서를 분할하는 것으로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쪼개기 예산 우려?…“피지컬AI는 복합 기술 집합체, 다수 현장 실증 필수”

예산안과 관련해서는 ‘쪼개기 예산’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지역 거점 사업의 경우 ‘지역 발전 연계’ 등 항목이 핵심성과지표(KPI)에 포함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역 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기술개발에 집중돼야 할 재원이 분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업에서 전북·경남 두 지역을 합쳐 총 35개의 사업이 추진된다. 통합형 과제 수행 단위는 세부 과제로 쪼개지기 때문에 실제 참여하는 기업은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하나의 사업에 1개 기업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제조기업·AI기업·데이터기업 등 다양한 관련 분야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예산 분산 문제는 ‘쪼개기’로 해석되기보단 ‘생태계 구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피지컬AI는 AI 모델 하나를 개발하는데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현장 영상 데이터, 물리 데이터 등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자료를 한데 모아야하고 이를 기반으로 AI 모델을 학습해야 한다. 또 AI 모델이 개발된 이후로도 현장에 적용하는데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종이 다른 로봇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기 위한 기술과 더불어 공정 전체 효율성을 증대하는 플랫폼 기술까지 다양한 복합 연구가 필요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AI는 다양한 이기종 로봇의 유기적인 연계와 다 분야 데이터의 유기적인 연결이 필요한 하나의 ‘플랫폼’ 기술”이라며 “이번에 경남 전북으로 다수 과제가 편성된 것도 다양한 데이터 및 기술 연구개발을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해 이를 통합하는데 방점을 찍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 지역AX? 글로벌 진출? “목표 하나 달성할 시간도 부족한데…”

또 다른 쟁점은 해당 사업의 목표가 하나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사업을 두고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피지컬AI 기술의 수출 품목화 등을 내세웠다. 안으로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일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AI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포부다.

문제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대부분 ‘지역 AX’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실제로 전북·경남 사업 RFP 모두 국가균형발전 연계가 명시돼 있었다. 경남 과제에는 수요기업으로 경남 지역 제조 관련 기업을 권고하고 있다. 전북 과제는 전북 지역 내 제조 관련 수요기업·공급기업과의 협력관계 제시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또 일부 과제는 지역기업 스케일업, 지역 혁신기업, 대학·연구기관, 시험·인증기관과의 성과확산 거버넌스까지 담고 있다. 특히 ‘개방형 연구클러스터 과제’는 3개 핵심시설과 7개 실증존을 연계하고, 산학연·수요기업이 공동 활용할 수 있는 운영체계를 마련하는 등 지역기업 스케일업과 후속 R&D 연계를 추진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지역AX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에 ‘글로벌 진출’이라는 선언적인 명목을 덧칠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글로벌 진출이 필요하다면 명확한 수요처 조사가 수반될 필요가 있는데, 이런 내용은 정부 정책이나 전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숙경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과제는 지역 AX 확산과 글로벌 피지컬AI 경쟁력 확보라는 두 목표를 함께 지향하고 있으나, 과제 설계상으로는 지역 실증과 지역기업 육성의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며 “과거 DX 정책의 한계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 실증을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추진 방식, 거버넌스, 실행 프로세스, 성과지표와 피드백 구조가 면밀하게 설계·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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