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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ESS' 시대…현대차, 전기차 수익모델 키운다

윤서연 기자

현대차그룹이 제주도에서 시범서비스 중인 'V2G'.[사진=현대차그룹]

[디지털데일리 윤서연기자] 전기차 시장이 캐즘을 지나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완성차 업계의 경쟁도 달라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를 넘어 이미 보급된 전기차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일반 고객이 참여하는 V2G 시범서비스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고 제주에서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소나 제한된 시험 환경이 아닌 실제 고객 가정에서 전기차와 전력망 간 충·방전을 구현하고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V2G는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과 연결해 양방향으로 전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심야 시간대에는 저렴한 전기로 차량을 충전하고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에는 차량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를 다시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기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닌 분산형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활용하는 개념이다.

최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수요 증가·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에너지 안보 중요성이 커지면서 V2G는 차세대 에너지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수백만 대의 차량 배터리를 하나의 거대한 전력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판매 다음은 '활용'

V2G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의 변화가 있다.

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판매 확대와 충전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최근에는 차량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와 수익모델 발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제조를 넘어 충전과 전력 거래·에너지 관리까지 연결하는 에너지 플랫폼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현대차·기아도 관련 준비를 이어왔다. 지난해 모빌리티 플랫폼 쏘카와 첫 V2G 실증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제주에서 아이오닉 9과 EV9 차주 40명을 대상으로 일반 고객 시범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의 충전기 연결 빈도와 이용 시간·배터리 방전에 대한 수용도 등을 분석해 향후 상용 서비스와 보상 체계를 설계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현대차·기아는 국내와 미국에서 '스티어 그리드(STEER GRID)'와 '파일럿 그리드(PILOT GRID)' 등 '그리드(GRID)'가 포함된 상표권도 잇달아 확보했다. 자동차 배터리 충전 서비스와 양방향 전력 전송·전력망 연계 에너지저장장치 등이 지정 상품에 포함된 만큼 향후 독자적인 V2G 서비스 브랜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기차가 돈 버는 시대 올까

V2G가 상용화되면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에 차량을 충전한 뒤 전력 가격이 높은 시간대에 남은 전기를 판매해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전력망 입장에서는 분산된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해 전력 수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한국전력은 10㎾급 양방향 충전이 가능한 전기차 10만 대가 동시에 1시간 동안 방전하면 약 1GW 규모의 발전소와 맞먹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 역할도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는 이미 관련 사업 모델이 등장했다. 영국 재생에너지 기업 옥토퍼스에너지는 전기차 리스와 양방향 충전기·전용 요금제를 결합한 V2G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용자는 전력 거래를 통해 전기료를 절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도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전력망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V2G 실증을 진행 중이다. 전기차를 분산형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해 전력망 안정성을 높이고 향후 에너지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전기차는 전력시장 참여 주체나 분산에너지 자원으로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 차량이 전력을 공급하더라도 이를 공식적인 전력 자원으로 인정하는 법적 근거와 정산 체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업계에서는 V2G가 실증 단계를 넘어 본격 확산하려면 전기차의 전력시장 참여 기준과 보상 체계·전력 거래 등 제도적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업계 요구를 반영해 관련 마스터플랜을 수립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V2G는 전기차 소유자의 경제적 혜택은 물론 국가 전력망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며 "완성차 업체와 충전사업자들이 상용화를 목표로 실증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법·제도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윤서연 기자
yun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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