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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가 두산을 선택한 이유…AI 시대, 다시 주목받는 '제조 DNA'

김유진 기자

6월7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방문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왼쪽)가 등번호 96번과 93번이 적힌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96번은 두산그룹 창립 연도인 1896년을, 93번은 엔비디아 창립 연도인 1993년을 의미한다. [사진=두산그룹]

[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지난 7일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행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개발 기업으로 알려진 엔비디아와 전통 제조기업 이미지가 강한 두산의 만남은 다소 의외로 보였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예견된 조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고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전력과 로봇, 첨단소재, 그리고 산업장비를 모두 보유한 두산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은 오랫동안 중공업과 건설기계 제조를 대표하는 전통 제조기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두산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로봇과 반도체 소재, 에너지 솔루션 중심으로 재편해 왔다.

실제 두산은 지난 수년간 두산로보틱스를 협동로봇 시장 주요 업체로 키웠고 ㈜두산 전자BG는 AI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에 사용되는 인쇄회로기판(PCB)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두산에너빌리티는 가스터빈과 소형모듈원자로(SMR), 두산퓨얼셀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사업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 AI 팩토리 퍼즐 맞춘 두산…엔비디아가 손 내민 이유

엔비디아가 최근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AI 반도체가 아니다. 젠슨 황 CEO는 이번 방한 일정 중 각종 행사에서 AI 팩토리와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축으로 거듭 언급했다.

AI 팩토리는 AI 모델을 학습·운영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서버·로봇·산업장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을 넘어 AI 팩토리 구축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전력 인프라와 냉각 설비, AI 서버용 첨단 소재, 생산 현장에서 활용될 지능형 로봇이 함께 구축돼야 하는데 두산이 이 분야의 사업 역량을 계열사 전반에 걸쳐 갖추고 있다.

즉 두산은 전력·첨단소재·로보틱스·산업장비 등 AI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핵심 사업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엔비디아의 주요 협력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젠슨 황 CEO는 "세상을 건설하고 이동시키며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업들에게 피지컬 AI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것"이라며 "엔비디아 DSX(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통합 설계 아키텍처)와 피지컬 AI를 두산의 에너지·로보틱스·첨단소재 사업과 결합함으로써 두산은 지능형 로봇과 자율 산업장비, 차세대 인프라 등 AI 시대 핵심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로봇부터 전력까지…피지컬 AI 동맹 본격화

이 같은 배경으로 엔비디아는 두산에 손을 내밀었고 양사는 피지컬 AI·로보틱스·AI 팩토리 분야에서 전방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의 에너지 솔루션은 엔비디아가 AI 팩토리 표준으로 삼는 DSX AI 팩토리 플랫폼에 활용될 예정이다. 양사는 AI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전력 공급 설계, 발전설비 최적화, 저탄소 전원 모색 등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간다.

특히 업계는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에 주목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피지컬 AI는 생성형 AI가 화면 속 답변을 넘어 실제 기계와 로봇을 움직이는 단계다.

두산로보틱스는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아이작 랩과 같은 오픈 라이브러리, 오픈 코스모스 월드 모델, 오픈소스 뉴턴과 로봇 제어를 위한 젯슨 토르 기반 단말 장치 등을 활용해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팔레타이징(팔레트에 쌓인 물건을 로봇이 옮기거나 분류하는 작업)과 샌딩(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처럼 정밀도를 요구하는 산업 현장 작업을 수행하는 레퍼런스 로봇 솔루션 개발을 논의 중이다. 양사는 에이전틱 로봇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로봇이 스스로 더 정확하게 작업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한 뒤 작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협력하기로 했다.

두산밥캣 역시 건설·농업·조경 장비에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접목한다. 이를 통해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장비가 다양한 작업 환경을 스스로 인식해 자율 작업이 가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 AI 시대 제조업의 역할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중공업 중심 기업으로 불렸던 두산은 이제 전력과 첨단소재, 로보틱스를 연결하는 AI 인프라 공급자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두산그룹은 오랜 기간 축적한 제조 역량을 토대로 에너지·로보틱스·첨단소재 분야에서 AI 시대에 필요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AI 팩토리 시대를 맞아 우리 사업 분야에서 AI를 적용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데 이번 엔비디아와 협력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euge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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