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환율 1550원 충격”…은행권, 자본비율 방어 비상

이호연 기자

원·달러 환율이 1535.0원을 기록 중인 6월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이호연기자]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50원을 돌파하면서 은행권의 자본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외환당국 개입으로 환율은 1530원 아래로 내려왔지만, 은행들은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6원 내린 1529.4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주말 사이 거시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이 모인 ‘F4 회의’에서 투기적 거래에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영향이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구두 개입에 이어 정부가 수출기업 불법 거래 조사 카드까지 꺼내 들면서 가파른 상승세는 일단 진정됐다. 그러나 은행권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고환율이 은행의 핵심 건전성 지표와 손익을 흔드는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대출, 외화유가증권 등 외화 표시 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난다. 실제 자산 규모나 리스크에 변화가 없어도 회계상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한다. RWA가 늘면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금융권에서는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은행 CET1 비율이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본다. 평가손실과 맞물려 100억~120억원 규모의 환차손익도 발생할 수 있다.

최근처럼 환율이 단기간에 수십원씩 움직이면 자본비율 부담은 더 커진다. 자본비율 하락과 유가증권·파생상품 평가손실은 당기순이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고, 향후 주주 배당 여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환율 수준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RWA 관리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WA) 지표를 활용해 자본비율을 점검하고 있다. KB금융은 외화 환산 손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 헤지를 강화하고, 계열사별 외환 포지션을 고려해 그룹 차원의 노출도를 관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계열사들과 RWA 현황을 주 단위로 점검하고 고환율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이날 리스크관리그룹장 주관 위기관리협의회를 열어 주가와 환율 등 주요 시장지표를 살폈다. 신한금융지주도 외환시장 변동 요인과 주요 통화 환헤지 포지션을 점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부터 위기대응협의회를 상시 가동하고 있다. 환율이 1600원대에 진입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금융도 지난 4일 그룹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주재 위기상황관리협의회를 열어 자본 적정성과 유동성 현황을 점검했다. NH농협은행도 환율과 시장금리를 모니터링하며 비상 대응 체계를 운영 중이다.

금융당국도 은행권 점검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신진창 사무처장 주재로 주요 시중은행 리스크 담당자들을 불러 긴급 회의를 열고 환율 변동성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은행별 외화 유동성, 자본 적정성 현황을 살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원화 약세 흐름에 편승한 투기적 움직임과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의 시장 안정 조치로 환율 급등세는 멈췄지만 외국인의 ‘셀 코리아’ 기조가 이어지는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은행들이 당분간 외환시장 상황별 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연 기자
lhy@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