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도체 랠리의 역설…삼전·하이닉스 급등이 ‘원·달러 환율’ 끌어올렸다

김남규 기자

[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주 랠리가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번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증시 강세는 통상 원화 강세 요인으로 꼽히지만, 최근에는 해외 투자자의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이 맞물리며 원화 약세를 키우는 이례적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42.7원까지 올랐다.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 3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전날 야간 거래에서도 환율은 장중 1540.3원까지 상승했다. 환율은 1500원대에 13거래일 넘게 머물며 외환위기 이후 최장 고환율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원화 약세는 단순한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반도체 경기 호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기술주가 급등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주식 보유 평가액이 빠르게 불어났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은 국가별·업종별 투자 비중을 일정 범위 안에서 관리한다. 특정 국가나 종목 비중이 기준선을 넘으면 차익실현이나 비중 조절 매도에 나설 수 있다.

앞서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역시 최근 ‘6월 금융시장 브리프’에서 5월 원·달러 환율 상승 배경으로 외국인의 증시 차익실현 매도와 고유가를 지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외국인의 증시 차익실현 매도와 고유가 영향으로 1518원까지 급등한 뒤 당국 개입으로 1499원까지 낮아졌지만, 외국인 주식 매도세가 이어지며 다시 1500원대로 반등했다.

같은 기간 국내 증시는 반도체 업황 기대감에 급등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코스피가 월초 6936포인트에서 출발해 반도체 중심의 강력한 랠리로 사상 처음 8000포인트를 돌파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반도체 랠리 자체를 환율 상승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주 급등 이후 외국인의 차익실현 매도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는 외환시장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면 원화 대금을 확보하게 되고, 이를 본국으로 회수하려면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야 한다. 원화 매도와 달러 매수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커지는 구조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투자자금 유출을 지목했다. WSJ에 따르면 심모시옹 OCBC그룹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최근 원화 약세는 펀더멘털보다는 자금 유출을 반영한 것”이라며 “AI 관련 주식시장 급등세가 소수 종목에 집중되면서 투자 포트폴리오 재조정과 외국인 자금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랠리는 한국 경제에는 분명한 호재다. 수출 개선과 기업 실적 회복, 증시 상승을 동시에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대형 반도체주 급등으로 해외 투자자의 한국 주식 비중이 커지고, 외인들의 리밸런싱을 위한 기계적 매도가 이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서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동 리스크와 고유가도 원화 약세를 키우는 요인이다. 중동지역 종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되면서 달러 수요는 더 커졌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6월 원·달러 환율이 미 연준의 연내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 중동지역 종전 협상 교착 상태와 안전자산 선호, 엔화 약세 지속 등의 영향으로 1500원 안팎의 높은 박스권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 리밸런싱 매도가 진정되지 않는 한 원화 반등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경상수지 개선에도 주식시장발 자금 유출이 이어지면 환율 하락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랠리가 증시를 밀어 올리는 동시에 외환시장에는 부담을 주는 ‘상승장의 역설’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남규 기자
ng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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