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대미문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 진상 규명 위해 특검도 검토해야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투표용지 부족 상황이 발생해 투표 시간이 이날 오후 10시까지 연장되는 소동이 일었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투표 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인 밤 10시까지 투표를 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 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는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을 빚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관리를 소홀히 해 6·3지방선거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태를 만든 만큼 사과와 문책에 그칠 일이 아니다.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사태의 전말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투표 용지가 모자라 오후 6시까지 투표를 끝내지 못한 곳은 잠실4동, 잠실2동, 잠실7동, 가락2동, 문정2동 등 송파구 12곳과 강남구 청담동, 광진구 구의3동 등 모두 14개 투표소다.
이 곳 유권자들은 투표 용지가 부족한 오후 시간대에 2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선관위가 밤 9시쯤 해명과 대국민 사과를 하기 이전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투표 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하고 있다",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도 있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투표 용지가 모자라 투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112신고도 14건 접수됐다고 한다.
선관위의 투표 관리 실패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투표를 하지 못했다면 참정권이 침해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개표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투표를 해야 하는 사태를 연출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을 선관위가 왜 이렇게 투표 관리를 엉터리로 했는 지, 납득할 수 없다.
선관위는 3일 밤 해명하는 자리에서 "투표 용지는 사전투표율과 과거 투표율을 고려해 인쇄한다"면서 "송파구는 유권자 수의 50%만 인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송파구는 투표소가 146개 있다보니 일부 투표소의 경우 유권자가 예상보다 많아 투표 용지가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로 송파구의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투표 용지를 인쇄했는 지, 설명이 없다. 어림짐작으로 대충 처리하는 주먹구구식 투표 관리를 했다는 얘기인데,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문화 강국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인가.
이번 선거의 사전투표율은 23.51%로 사전투표가 전국 단위에 처음 적용된 2014년 이후 지방선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합산한 투표율은 61.0%로 두 번째로 높았다. 서울 투표율은 63.6%인데 투표율이 가장 낮은 금천구도 58.7%를 기록했다.
그런데 송파구 투표율을 50%로 이하로 예측하고 투표 용지를 인쇄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투표를 적극 권장해야 할 국가 기관이 지레짐작으로 절반만 투표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선관위는 2025년 5월 29일 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때도 서대문구 신촌동 투표소에서 투표 용지를 받은 30~40명의 대기줄이 투표소 밖까지 이어지게 하는, 투표 용지 유출 사건이 발생해 사과한 적이 있다.
투표 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 절차 정당성 등의 문제로 인해 투표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2021년 9월 총선과 지방선거 주민투표에서 투표 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못하거나 다른 지역의 투표 용지를 배부해 투표의 효력이 사라지는 혼란이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가 끝나기도 전에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기도 하면서 야당이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독일 헌법재판소는 2년 뒤 선거 과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판단해 일부 지역에 재선거를 실시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선거 시스템의 신뢰를 훼손한 대표 사례로 선거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으로 본다.
감사원 직무감찰과 경찰·검찰 수사, 필요하면 특검에 이르기까지 역량을 동원해 송파구 전체 유권자의 50%만 투표 용지를 인쇄하게 된 경위 등을 파헤치기 바란다. 선관위의 단순 실수나 행정 착오로 관련자 문책이나 사퇴 만으로 넘길 사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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