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계

"저자세 대응 땐 또 피격될 수도"…정부 '딜레마' 커진 HMM 나무호 사태

김유진 기자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5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피격된 한국 선박 HMM 나무호 조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피격된 HMM 소속 화물선 '나무호'의 공격 주체가 사실상 이란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중동 해상 안보 리스크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 측은 즉각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미국·이스라엘 배후설까지 제기하고 나서면서 양국 간 외교적 긴장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선박 25척이 여전히 대기 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대응 수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지를 두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자칫 이란을 자극할 경우 추가적인 선박 억류나 통항 제한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HMM 나무호 피격 사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란 측에 공식 항의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조만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를 위해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진행한 HMM 나무호 조사결과 브리핑에서 "기술 분석 결과 나무호를 타격한 것은 이란에서 개발된 '누르' 계열 대함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나무호에서 발견된 엔진과 탄두·폭약·기체 등을 분석한 결과 비행체 탄두 형상과 부품 일부가 이란 대함미사일 '누르' 또는 개량형인 '카데르'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부품에서는 이란 제조사 각인도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 결과 나무호는 두 차례 공격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첫 번째 탄두는 폭발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탄두는 실제 기폭된 것으로 조사됐다.

피격 당시 나무호는 호르무즈 해협 내측 아랍에미리트(UAE) 인근 해역에서 닻을 내린 상태였으며 선미가 이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실제 미사일 역시 이란 방향에서 선미 쪽으로 날아와 명중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다만 정부는 공격 주체를 이란이라고 단정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박 차관은 "여러 증거가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면서도 "그쪽(이란)에서 인정하지 않는 한 고의성 자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는 이날 외교부 초치 직후 "이란은 이 문제에 대해 다 부인한다"며 "절대 개입한 게 없다"고 반발했다.

쿠제치 대사는 "적대국들의 가짜깃발 작전을 주의해야 한다"며 미국과 이스라엘 배후 가능성을 주장했다.

또 "지금 중동에서 발생하는 긴장 상태는 미국 정권과 침략 때문"이라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가 HMM 나무호 호르무즈해협 피격 사건과 관련 5월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로 초치된 뒤 청사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강경 대응론 커지는데…남은 25척 韓선박 안전 변수

양국이 외교적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해운업계의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한국 선박 25척이 여전히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27일(현지시간) 공식 매체 세파뉴스를 통해 최근 24시간 동안 유조선과 상선 등 선박 23척이 IRGC 해군의 허가와 보호 아래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국 선박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추가 대응이 실제 손해배상 청구나 국제사회 공동 제재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직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들의 안전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응할 경우 향후 한국 선박이 분쟁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HMM 나무호 공격 주체를 이란으로 명확히 단정짓지 않으면서도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해 항의하겠다는 것은 대응 측면에서 다소 일관성이 부족해 보인다"며 "이번 사건의 타격 주체를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선박들도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알리고 공동 대응 압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번 사건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향후 또 다른 분쟁 지역에서 한국 선박이 비슷한 공격을 다시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사실관계가 드러난 이상 정부 차원의 엄정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유진 기자
euge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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