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피한 삼성전자, 파업 불씨는 여전…'마지막 협상' 결과에 주목

2차 사후조정 회의 참석하는 여명구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가운데)과 김형로 부사장(왼쪽)[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기자] 삼성전자가 노조 파업에 따른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전망이다. 법원이 반도체 생산시설 보호와 제품 변질 방지를 위한 필수 인력 유지를 명령하면서다. 다만 노조가 예정된 파업 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는 데다 법원 결정의 해석을 두고 노사가 다시 충돌하면서 파업 전 긴장감은 여전한 분위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민사31부는 삼성전자가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법원은 안전 보호시설과 시설 손상 방지, 제품 변질 방지를 위한 인력 투입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나 웨이퍼 등 원재료 손상으로 번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연속 가동을 전제로 운영된다. 일부 공정에서 설비 관리나 품질 유지 인력이 빠질 경우 생산 차질뿐 아니라 투입 중인 제품과 원재료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법원이 삼성전자 측 신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 노조의 파업 방식에도 법적 제약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파업이 현실화되더라도 생산시설 보호와 제품 변질 방지를 위한 핵심 인력은 현장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거나 전 공정으로 확산되는 리스크는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번 결정이 노조의 파업 자체에 대한 영향을 피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법원 결정의 영향을 받는 인력은 약 7000명으로 반도체 부문 인력의 약 9%, 전체 인력의 5.5% 수준이다. 반면 노조 측에서는 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이 4만7000명을 넘었고, 실제 참여 인원은 5만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이 명시한 필수 인력 범위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안전 보호시설을 평상시와 동일하게 유지·운영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평상시에 대해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을 뜻함'이라고 적시했다.
노조 측은 이 문구를 근거로 주말 또는 휴일 수준의 최소 인력만 남겨도 법원 결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조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마중은 사측이 평일 인력 기준으로 필수 업무를 수행할 경우 반도체 부문에서만 7000명이 근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번 결정으로 주말 또는 연휴 인력 근무가 가능해졌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실제 근무 인원은 7000명보다 줄어들 수 있고 쟁의행위에도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러한 노조 측 주장이 "명백히 법원 결정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이 평상시란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휴일'을 의미한다고 결정문에 명확히 적시했고, 이에 따라 쟁의기간 중 평일은 평일 수준 인력을 배치하고 주말에 주말·휴일 수준 인력으로 안전보호시설 및 보안작업을 유지하라는 의미라는 게 명백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법률대리인인 지평도 노조의 해석이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최승호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부터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두번째 사후조정 회의에 돌입했다. 이번 사후조정은 18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된 뒤 19일에도 같은 시간대에 이어질 예정이다. 논의가 길어질 경우 종료 시간은 더 늦어질 수 있다. 앞서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 1차 사후조정도 자정을 넘겨 13일 새벽 종료된 바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성과급 재원 기준과 상한 폐지, 성과급 제도화 등 핵심 쟁점을 두고 노사가 다시 줄다리기를 벌일 전망이다. 박수근 중노위원장은 점심 휴게시간 회의장을 나오며 "아직 기본 입장만 들었다"면서 "오후부터는 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대화되고 있다"면서도 "해 봐야 한다. 지금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이번 사후조정은 파업 전 사실상 마지막 협상 기회로 여겨진다. 노조가 예고한 파업 시점은 오는 21일이다. 노사는 주말에도 연이틀 사전 미팅을 갖고 조정 회의를 준비했으나 성과급 투명화와 상한 폐지 등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사태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 앞서 김민석 국무총리는 삼성전자 파업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내고 18일 교섭을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노사 간 타협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두고 생산 리스크와 노사 갈등 리스크를 구분해 봐야 한다는 시각이 나온다. 법원 가처분 결정으로 반도체 공장 운영에 필요한 최소 안전판은 마련됐지만, 대규모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전자가 받을 경영 부담은 여전히 작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반도체 업황 회복과 인공지능(AI) 메모리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대외 신뢰도와 내부 생산성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을 위해 공급받는 소재·부품 협력사의 경우 가동 중단 혹은 속도 조절 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악은 면했으나 야직까지 협상 결과가 안갯 속인 만큼 타결을 쉬이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간신히 슈퍼사이클에 올라 탄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해칠 뿐더러,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다수 중소·중견 협력사 생태계까지 압박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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