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GPU·전력·인프라, 하드웨어 자립이 'AI 영토' 결정한다 [창간 21주년 특집]

김문기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를 맞이해 퐁텐블루 호텔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이끄는 새로운 산업 혁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진=김문기 기자]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인공지능(AI) 경쟁의 무게중심이 거대언어모델(LLM)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영역을 넘어, 이를 실제로 구동하고 구현하는 ‘물리적 인프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과 모델이 존재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GPU가 부족하거나, 막대한 전력 소모를 감당할 인프라가 받쳐주지 못하면 ‘AI 주권’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즉, AI 주권은 보이지 않는 코드의 세계가 아닌, 반도체 수율과 에너지 효율이라는 물리적 한계 위에서 결정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월5일(현지시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찬 회동에서 SK하이닉스를 다룬 신간 '슈퍼모멘텀'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GPU 확보전, 기술 경쟁 넘어 ‘안보 자산’으로

현재 글로벌 AI 산업은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하이엔드 GPU 수급 체인에 종속돼 있다. 전 세계 기업과 국가들이 AI 연산의 핵심인 GPU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GPU 보유량은 곧 그 나라의 AI 학습 속도와 서비스 품질, 나아가 산업 전체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결정짓는 척도가 됐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의존하는 하드웨어 구조는 언제든 ‘공급망 리스크’로 돌변할 수 있다. 지정학적 위기나 무역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하드웨어 수급 차질은 곧 국가 AI 경쟁력의 마비로 이어진다.

업계에서 하드웨어 자립 없는 소프트웨어 주권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NPU(신경망처리장치)와 같은 차세대 AI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수율을 확보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 저전력·고효율, AI 기기의 물리적 한계를 결정짓는 변수

AI 기술이 클라우드를 넘어 온디바이스(On-Device) 형태로 진화함에 따라, 전력 효율은 단순한 사양의 문제를 넘어 기술의 ‘실현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스마트폰, 노트북, 자율주행차 등 제한된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기에서 고성능 AI를 상시 구동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전반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우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영역에서의 기술 자립이 시급하다. AI 연산은 막대한 발열과 전력 소모를 동반하는데,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초미세 공정에서의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기기의 시각적 접점인 디스플레이 역시 저전력 기술 도입을 통해 전체 소비 전력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OLED 등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디스플레이 자산이 AI 시대에 맞는 인프라로 재정의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에너지의 근원인 배터리 역시 마찬가지다.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모바일 기기와 로봇, 전기차 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에너지 밀도와 효율성을 요구한다. 배터리 효율 최적화는 AI 하드웨어가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움직이게 하는 ‘엔진’과 같다. 배터리 기술의 격차가 곧 AI 기기의 물리적 한계치를 결정짓는 셈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 참석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韓 제조 자산의 '인프라화' 전략… 하드웨어 자립이 해답

한국형 AI 주권을 지키는 길은 우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제조 자산’을 단순한 제품이 아닌 ‘국가적 AI 인프라’로 결집하는 데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를 국내 AI 팹리스 및 서비스 기업들과 긴밀하게 연계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 수율 개선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 디스플레이와 배터리의 저전력·고효율 혁신은 우리 제조업이 AI 시대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러한 하드웨어 자산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때, 비로소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AI 영토를 구축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는 “AI 주권은 단순히 모델 하나를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설계부터 제조, 에너지 공급에 이르는 전체 밸류체인을 얼마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제조 역량을 국가 전략 인프라로 인식하고, 민관이 협력하여 하드웨어 자립도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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