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방 가습기 추천해줘”…뜨거운 AI 쇼핑비서 경쟁
유통의 경쟁은 더 이상 상품의 종류나 가격에 머물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경쟁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유통업계는 인공지능(AI)을 통해 고객의 취향을 분석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선택’을 대신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에선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유통과 소비재, 여행 산업에서 AI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의 소비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조망합니다.<편집자 주>

[사진=현대백화점]
[창간 21주년 각 산업별 스페셜 기획 - 2부] 2026년, AX혁신 전략 심층 분석 13회
[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아기 방에 둘 만한 미니 가습기 추천해줘.” “출근할 때 입기 좋은 화사한 느낌의 블라우스 보여줘.”
최근 유통업계 AI 쇼핑 서비스에서 실제 등장하는 질문들이다. 소비자가 상품명이나 브랜드를 직접 검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황과 감성을 자연스럽게 설명하면 AI가 상품을 추천해주는 ‘대화형 쇼핑’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네이버와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등 주요 유통기업들도 AI를 활용해 쇼핑 경험을 ‘검색 중심’에서 ‘취향 중심’으로 바꾸는 데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먼저 대표적인 사례는 네이버다. 네이버는 지난해 AI 쇼핑 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2월 ‘AI 쇼핑 에이전트’ 베타 서비스를 도입하며 대화형 쇼핑 확대에 나섰다. AI 쇼핑 에이전트는 상품 스펙과 리뷰를 자동으로 분석·비교하고, 이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기능이다.
기존에는 사용자가 키워드를 조합해 상품을 검색했다면, 이제는 “아기 방에 둘 만한 미니 가습기 추천해줘”처럼 상황 자체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쇼핑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게 네이버 측 설명이다. 정경화 네이버 커머스 프로덕트 리더는 최근 한국유통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이제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고민을 직접 질의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찾는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용 지표도 변화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AI 쇼핑 에이전트 출시 이후 사용자 수는 2개월 만에 약 20% 증가했고, 대화 수는 40% 늘었다. 추천 상품 클릭률 역시 기존 검색 대비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취향 기반 큐레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3월 프리미엄 큐레이션 전문몰 ‘더현대 하이(Hi)’를 선보이며 자체 AI 쇼핑 어시스턴트 ‘헤이디(HEYDI)’ 서비스를 도입했다. 단순 할인 행사나 광고 대신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중심 콘텐츠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무엇을 살까”보다 “어떤 삶을 원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구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인 화면에서는 계절과 공간, 취향에 맞는 상품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패키지’처럼 제안하며, 고객이 큐레이션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미 스페이스(Me Space)’ 기능도 운영 중이다.
성과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더현대 하이 신규 가입 회원 수는 출시 한 달 만에 23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이용자 수는 700만명을 기록했다. 화면 상단 큐레이션 콘텐츠 클릭 비중은 일반 온라인 기획전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롯데쇼핑은 롯데온을 중심으로 감성 기반 AI 쇼핑 강화에 나섰다. 롯데온이 최근 선보인 ‘패션AI’는 패션 카테고리에 특화된 대화형 검색 서비스다. “봄 하객 원피스”, “출근용 블라우스” 같은 상황형 검색은 물론 “하늘하늘한 티셔츠”, “화사한 색상의 가디건” 같은 감성 표현까지 인식해 상품을 추천한다.
롯데온은 기존 키워드 검색만으로는 소비자의 미세한 취향과 스타일 차이를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보고 있다. 특히 패션 상품은 같은 재킷이라도 고객별 활용 목적과 분위기에 따라 선택 기준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AI 기반 탐색 기능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결국 ‘검색의 시대’에서 ‘추천의 시대’로 유통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의미라고 보고 있다. 상품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소비자는 더 많은 정보를 원하기보다, 자신의 취향과 상황을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선택지를 빠르게 제안해주는 경험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비자가 직접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해 원하는 상품을 찾았다면, 이제는 AI가 이용자의 취향과 구매 이력, 상황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먼저 상품을 제안하는 방향으로 소비 경험이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유통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보유했느냐보다 얼마나 정교하게 고객에게 맞춤형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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