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강제 편성 이제 한계”…유료방송 규제 완화 목소리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유료방송 진흥을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유료방송 사업자에 대한 요금·상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규제 체계가 상품 구성과 가격에 대한 시장 자율성을 제한하면서 산업 경쟁력 저하와 소비자 선택권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유료방송 진흥을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 “소비자들은 단순히 많은 채널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좋은 콘텐츠를 보고 싶어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IPTV방송협회 후원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과 글로벌 플랫폼 경쟁 심화 속 국내 유료방송 산업의 규제 개선 방향과 진흥 방안이 논의됐다.
특히 방송 결합요금 승인제와 약관 변경 절차 등 유료방송 핵심 규제의 합리화 필요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유료방송 요금 승인제는 지난 2022년 신고제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수리’를 전제로 운영되면서 실질적인 요금 자율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고 이후에도 정부와 협의 절차가 필요한 만큼 혁신적인 상품 출시로 이어진 사례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사업자들은 콘텐츠 사용료 인상분을 요금에 유연하게 반영하거나 상품 구조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력이 낮은 채널을 정리하지 못하고, 유사 콘텐츠 채널에도 비용을 지속 지급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성순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는 “과거 요금·약관 규제 목적은 방송의 공공성 확보와 시장지배력 억제, 콘텐츠 다양성 유지에 있었다”면서도 “지금도 유료방송 사업자가 그 수준의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지, 이용자들이 실제 콘텐츠를 어디서 소비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가격도 채널도 못 정한다”…시장 현실 반영한 규제 재설계 필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유료방송 진흥을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디지털데일리]
이어진 토론에서도 유료방송 요금·약관 규제가 현재 시장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과거 유료방송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전이를 우려해 도입된 규제지만, OTT 등 대체 플랫폼이 급증한 상황에서 더 이상 기존 규제 논리가 유효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원래 시장에선 사업자가 가격을 스스로 설정하고 어떤 상품을 얼마나 생산할지 자율권을 갖는다”며 “하지만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경우 공공채널과 종교채널, 장애인 방송 등을 일정 수준 이상 의무 편성해야 하다 보니 사업자들이 가격도 자유롭게 정하기 어렵고 채널 편성도 유연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과거 규제 체계에서 벗어나 실제 이용률과 영향력 등을 반영한 데이터 기반 경쟁상황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용희 선문대 교수는 “유료방송 사업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일종의 미신적인 믿음이 있다”며 “과연 지금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누구인지, 실제 경쟁 제한이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보다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도 “IPTV는 기술적으로는 QoS가 보장되는 등 OTT보다 우수한 측면이 있음에도, 서비스 경쟁력과 콘텐츠 경쟁에서는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즉 현재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는 전통적인 시장획정 방법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규제에 커지는 유료방송 부담…서비스 혁신 저해 초래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유료방송 진흥을 위한 규제 합리화 방안’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은 유용화 신임 한국IPTV방송협회(KIBA). [사진=디지털데일리]
전문가들은 현재 규제 구조가 결과적으로 소비자 편익 확대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장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가격과 상품 구조를 제한하는 이중 규제가 유지되면서 서비스 혁신이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석전문위원은 “온라인 플랫폼과 유료방송 플랫폼의 본질적 차이는 결국 서비스와 상품의 최적화”라며 “혁신의 출발은 서비스인데, 지금 (유료방송의) 구조가 서비스 혁신이 가능한 구조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최 조사관도 “현재는 번들 상품에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채널이 많다”며 “하지만 소비자마다 원하는 번들 구성이 다를 수 있는 만큼 시행령 차원에서라도 의무 편성 기준을 조금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공공채널을 각각 3개씩 의무 편성하게 돼 있다면 이를 각 영역별 1개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식도 가능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입법 차원에서도 이런 의무채널 편성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규제가 아닌 투자 유도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교수는 프랑스와 영국 사례를 언급하며 “프랑스는 사전 규제 중심 모델에 가깝고 영국은 사후 규제와 세제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프랑스는 플랫폼 규제 강화 이후 제작비는 급등했지만 제작 편수는 줄고 재원 배분 갈등은 심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CJ ENM이나 주요 제작사들도 불확실성과 재원 배분 문제 때문에 투자를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 구조에서는 IPTV나 SO 사업자 역시 투자 확대가 쉽지 않고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분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산업 자체의 매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 소장은 “앞으로는 단순한 약자 보호를 넘어 실제로 투자하는 사업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발전할 필요가 있다”며 “이제 시청자들은 채널 수보다 좋은 콘텐츠와 실질적인 선택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규제 개선 역시 시청자 권익 확대와 서비스 선택권 보장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정부도 규제 완화 공감…통합미디어법·데이터 광고 생태계 추진
이날 정부 역시 규제 완화 방향성에는 공감대를 나타냈다.
강동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과장은 요금·약관 규제 완화와 관련해 “사업자 자율성을 확대하고 사전 규제 중심 체계를 사후 규제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한다”며 “다만 시청자 권익 보호와 채널 송출 안정성, 콘텐츠 사업자와의 협상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OTT 등 신규 사업자를 아우르는 통합 미디어 법제 마련에도 속도를 낸다. 이르면 이달 중 유료방송 사업자 의견 수렴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방미통위는 낡은 방송 규제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취지에서 통합미디어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현행 방송법은 2000년 제정 이후 큰 틀을 유지해오면서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OTT와 FAST(무료 광고 기반 스트리밍) 등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가 등장했음에도 현행법은 여전히 케이블TV·위성방송·IPTV 등 전송 기술 중심 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업계는 통합법 제정을 통해 OTT의 법적 지위가 명확해질 경우 동일 서비스에는 동일 규제를 적용하는 ‘수평 규제 체계’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OTT는 기존 방송사업자와 달리 법적 규율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어 ‘규제 역차별’ 문제가 지속 제기돼 왔다.
강 과장은 “진입 규제와 재허가·재승인 제도 폐지, 소유 규제 완화 등은 이미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라며 “입법 과정에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방미통위는 유료방송 규제 완화와 함께 시청 데이터 기반 광고 생태계 혁신 방안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미디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시장 자체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강 과장은 “시청 데이터 기반 광고 생태계 혁신 정책도 검토 중”이라며 “빠르면 이달 중 민간 협의체를 발족해 시청 데이터 표준화와 검증, 확산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디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데이터 확보와 IP 경쟁력, AI 기반 제작 혁신이 핵심 과제”라며 “정부 차원의 투자 지원과 제작·유통 공정 혁신 체계 마련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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