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알쓸신기] ⑧ 붕어빵 틀이 배터리 성능을 결정한다?…에너지를 담는 그릇 '양극재'

김문기 기자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장벽은 높아만 갑니다. 산업 현장의 소식을 빠르게 전해온 <디지털데일리>는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기술의 세계를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로 '알쓸신기 :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박한 기술 사전' 시리즈를 구성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일상을 움직이는 핵심 산업 기술을 하나씩 풀어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알쓸신기 :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박한 기술 사전 [사진=생성형 AI 활용]

추운 겨울, 갓 구워낸 붕어빵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속재료를 고민한다. 팥을 넣을지, 슈크림을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입맛이지만, 그 재료를 얼마나 가득 담을 수 있는지와 빵의 모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는 결국 붕어빵 틀에 달려 있다. 틀이 찌그러져 있거나 열전달이 고르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속재료를 써도 품질 좋은 빵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 세계에서도 이 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배터리의 4대 핵심 요소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 중 가장 비싸고 중요한 양극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전체 원가의 약 40%에서 5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며, 전기차의 주행거리와 출력이라는 핵심 성능을 좌우하는 에너지의 그릇이다.

삼원계 양극재 기반 경쟁력과 차기 포트폴리오를 소개하는 에코프로 전시 부스 공간

◆ 양극재: 리튬이온이 머무는 초정밀 에너지 아파트

배터리가 전기를 만드는 과정은 리튬이온들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과정이다. 이때 양극재는 리튬이온들이 충전되지 않았을 때 머무는 아파트 역할을 한다. 단순히 담아두는 통이 아니라, 아주 미세한 수준에서 입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입체적인 건축물과 같다.

좋은 아파트일수록 더 많은 입주민인 리튬이온을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다. 입주민들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 통로가 넓고 튼튼해야 병목 현상이 생기지 않고 아파트 건물 자체도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는다. 만약 이 아파트의 구조가 약하면 리튬이온이 몇 번 드나들기도 전에 건물이 금이 가거나 주저앉게 되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배터리 수명이 다했다는 현상의 본질이다.

양극재가 배터리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이유는 그 재료가 귀하고 가공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니켈, 코발트, 망간 같은 희귀 금속들을 정밀한 비율로 섞어 구워내야 하며, 이 과정은 명품 도자기를 굽는 것만큼이나 까다롭다. 온도나 습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리튬이온이 머물 공간이 뒤틀려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극재는 단순한 가루가 아니라,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정밀한 화학적 건축물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2026년 현재 한국의 양극재 기업들은 이 아파트를 더 높고 단단하게 짓기 위해 나노 단위의 설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지 3공장 내 삼원계 양극재 소성로. LFP 소성로는 이보다 큰 규모로 설계돼 있다 [사진=엘앤에프]

◆ 레시피 전쟁: NCM과 LFP, 그리고 2026년의 새로운 도전자 LMFP

양극재는 어떤 금속을 섞느냐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크게 두 가지 레시피가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그 중간 형태인 새로운 레시피까지 등장한 상태다.

첫째는 한국 기업들의 주력인 NCM(니켈·코발트·망간)이다. 각 금속은 저마다의 임무가 있다. 니켈은 용량을 담당해 주행거리를 늘려주고, 코발트와 망간은 안정성을 높여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한다. 최근의 기술 트렌드는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하이니켈 기술이다. 아파트의 평수를 극단적으로 넓혀 한 번 충전에 600km에서 700km 이상을 가게 만드는 전략이다. 니켈 함량이 1% 올라갈 때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수십 킬로미터씩 늘어나기 때문에, 2026년의 기술 경쟁은 이 1%를 누가 더 안정적으로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둘째는 가성비를 앞세운 LFP(리튬·인산·철)다. 비싼 코발트 대신 흔한 철을 사용해 가격을 낮춘 모델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는 짧지만, 구조가 매우 튼튼해 화재 위험이 적은 철근 콘크리트 빌라 같은 매력이 있다. 특히 2026년에는 LFP의 단점인 낮은 전압을 극복하기 위해 망간을 추가한 LMFP 배터리가 보급형 전기차 시장의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포기할 수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이 새로운 레시피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엘앤에프 부스에 전시된 LFP 양극재 소재와 기술 소개 디스플레이

◆ 무너지지 않는 아파트의 비결: 단결정 양극재 기술

최근 배터리 업계에서 주행거리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전이다. 배터리에 충격이 가해지거나 오래 사용했을 때 내부에서 가스가 발생하고 불이 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등장한 혁신 기술이 단결정 양극재다.

기존의 양극재는 작은 알갱이 수천 개가 포도송이처럼 뭉쳐 있는 다결정 형태였다. 이 방식은 만들기는 쉽지만, 리튬이온이 수없이 드나들며 압력을 가하면 알갱이 사이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기게 된다. 여러 개의 벽돌을 쌓아 만든 벽이 지진에 약한 것과 비슷하다. 이 틈 사이로 전해액이 침투해 원치 않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 가스가 발생하고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 현상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화재로 이어진다.

단결정 양극재는 이 작은 알갱이들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합쳐버린 기술이다. 여러 개의 벽돌 대신 통째로 깎아 만든 커다란 바위 하나로 아파트를 짓는 셈이다. 입자 사이에 틈이 없으니 아무리 리튬이온이 거칠게 드나들어도 구조가 깨지지 않는다. 덕분에 가스 발생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배터리 수명은 20% 이상 늘어났다. 2026년 현재 생산되는 고성능 전기차들은 대부분 이 단결정 양극재를 채택하여 화재 걱정 없는 전기차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알쓸신기 :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박한 기술 사전 [사진=생성형 AI 활용]

▶ 알쓸신기 토크 어바웃 - 도시 광산, 다 쓴 배터리가 보물섬이 된다

산업적 관점에서 양극재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쌀이자 반도체다. 한국은 자원 빈국이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양극재 가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재료를 수입해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같은 기업들이 수십조 원의 수주 대박을 터뜨리는 배경에는 이러한 가공의 마법이 숨어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배터리 재활용이 양극재 산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다 쓴 전기차 배터리를 수거해 그 안에 들어있는 니켈과 코발트를 다시 뽑아내는 기술이다. 이를 도시 광산이라 부른다. 땅을 파서 금속을 캐는 대신, 다 쓴 제품에서 원재료를 99% 이상 회수해 다시 새 양극재를 만드는 순환 구조다. 이는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자원 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정 국가에 의존하던 원자재 공급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재료를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양극재 기술은 단순히 배터리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지구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지혜롭게 돌려 쓰는 지속 가능한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 알쓸신기 키워드 번역기

·양극재: 배터리의 용량과 전압을 결정하는 핵심 소재. 배터리 원가의 약 40% 이상을 차지하는 비싼 가루다.

·전구체: 양극재가 되기 전 단계의 중간 물질.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정밀하게 섞어 만든다. 여기에 리튬을 넣고 구우면 양극재가 된다.

·하이니켈: 양극재 성분 중 니켈 비중을 80%에서 90% 이상으로 높인 것.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기술이다.

·단결정 양극재: 여러 입자가 뭉친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만든 양극재. 열에 강하고 수명이 길어 화재 예방에 효과적이다.

·수율: 투입한 원재료 대비 결함 없는 제품이 나오는 비율. 양극재 공정은 미세한 오염에도 민감해 이 수율을 유지하는 것이 곧 기업의 실력이다.

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