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계

車보다 선박이 먼저?…AI '자율 항해'시대 성큼, 해상 판도 바뀐다 [산업AX파일]

김유진 기자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중후장대 산업에서도 인공지능 전환(AX)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AI는 기술 도입을 넘어 산업 경쟁력 판도를 바꾸는 흐름입니다. 이같은 'AI 대전환'에 주목하며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생산공정·품질·안전 등 산업 현장 전반으로 AI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산업AX파일>을 통해 AX 시대 제조업 현재와 변화 방향을 따라가봅니다. <편집자주>

HD현대중공업과 팔란티어가 공동 개발 중인 인공지능(AI) 기반 무인수상정 '테네브리스'. [사진=HD현대]

[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 확산으로 글로벌 물류와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그 물동량을 실어 나르는 바다의 풍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여기에 탄소 규제 강화와 선원 부족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선박 운항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자율 운항'이 떠오르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 운항 기술을 미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특히 HD현대는 자회사인 아비커스를 중심으로 자율 운항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며 산업 전환을 이끌고 있다.

지난 7일 HD현대는 아비커스가 최근 노르웨이선급(DNV)으로부터 자율 운항 시스템 '하이나스 컨트롤'에 대한 형식승인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선박에 적용 가능한 양산형 자율 운항 시스템이 국제 공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이나스 컨트롤은 별도의 추가 검증 없이 설치가 가능해지면서 상용화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 선원 대신 AI가 항해한다…자율 운항, 어떻게 작동하나

자율 운항 기술의 핵심은 선박의 인지·판단·제어를 AI가 대신 수행하는 데 있다. 주변 선박과 장애물을 인식하고 해상 상황을 분석해 충돌을 피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기존에는 선원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던 항해가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다만 선박 자율 운항은 자동차 자율 주행보다 더 복잡한 기술로 평가된다. 도로와 달리 해상은 정형화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도와 해류, 바람 등 외부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 데다 선박의 크기와 관성에 따라 즉각적인 방향 전환도 어렵다. 이 때문에 먼 거리에서부터 상황을 예측하고 대응하는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 능력이 요구된다.

이 같은 기술은 실제 운항 효율 개선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자율 운항 시스템은 기상 조건과 해상 상황, 도착 시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항로와 속도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파도가 잔잔해 선박 하중이 낮을 때는 속도를 높이고 반대로 하중이 커질 경우 무리한 가속을 피하는 방식으로 연료 소모를 줄인다. 이를 통해 연료 사용량과 탄소 배출을 동시에 절감할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수출용 2300톤급 무인잠수정. [사진=HD현대]

◆ 민간 넘어 국방까지…'유령 함대' 시대 열린다

자율 운항 기술은 군사 영역으로까지 빠르게 확장 중이다. 무인함정을 활용한 새로운 해양 전력 체계 구축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 각국은 무인수상정(USV)과 무인잠수정(UUV)을 활용한 이른바 '유령 함대' 개념을 추진하며 해양 전력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사람이 탄 군함과 무인함정이 함께 운용되는 미래 해군 체계를 의미해 유령 함대라 불린다. 대한민국 해군 역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인 '네이비 씨 고스트'(Navy Sea GHOST)를 추진하며 무인함정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도 이에 발맞춰 글로벌 협력을 확대하며 AI 기반 무인함정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AI 방산기업 안두릴과 '첨단 무인잠수정 시스템 공동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미국선급협회(ABS)와도 MOU를 맺어 자율 해양 시스템의 인증 체계 구축에도 나선다. 또 HD현대중공업은 미국 AI 방산기업 팔란티어와 무인수상정 '테네브리스'를 공동 개발 중이며 올해 중으로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 고도화 속 남은 숙제…규제 정비·인간 개입 범위 논의 필요

다만 완전한 무인 자율 운항까지는 제도적 과제가 남아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 운항을 1~4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현재 일부 자율 운항 단계까지만 제도화가 이뤄진 상황이다. 선원이 없는 3~4단계는 규제 정비가 상용화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무인함정의 자율 임무 수행 범위가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비역 해군 대령인 박범진 경희대 안보전략 겸임교수는 "유인함정 단독 체계로는 전시 상황에서 인명 생존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개념 아래 무인수상정과 무인잠수정이 보조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무인수상정에는 레이더와 전자광학·적외선(EO·IR) 카메라가 탑재돼 있고 무인잠수정에는 수중 감시·정찰의 핵심인 소나(SONAR)가 장착돼 수중과 수상 표적의 위치를 탐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이러한 체계가 탐지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향후에는 기술 발전을 통해 탐지 기능을 넘어 공격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고도화하고 있다”며 “무인함정에 고도의 AI 기술이 적용되면 인간의 통제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어 독자적으로 임무를 판단하고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김유진 기자
euge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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