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추천도 정부 재량?…“방송3법 구조적 한계”

[사진=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방송3법 시행을 앞두고 마련된 후속 규칙안을 두고 제도 전반에 구조적 결함이 내재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종사자 범위 설정부터 이사 추천 구조까지 주요 쟁점마다 공정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 출신 안정상 교수는 24일 ‘방송3법 관련 방미통위 규칙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현재 규칙안은 개별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모법 설계 단계부터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방송3법은 KBS·MBC·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를 개편하고, 이사 및 사장 추천 권한을 정치권 외부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정치적 후견주의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방송3법이 최근 의결됨에 따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종사자 범위와 종사자 대표 자격요건 ▲이사 추천 단체(방송미디어학회·변호사단체·교육 관련 단체) ▲여론조사기관 기준(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구성 관련) 등을 구체화한 후속 규칙안을 마련했다. 편성규약 위반 등에 대한 과태료를 1000만원 수준으로 설정하는 등 제도 이행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도 포함됐다.
◆ “제도적 정합성 떨어져”…종사자 범위·이사 추천 구조 등 논란
보고서는 우선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종사자 범위 설정을 문제로 지적했다. 규칙안은 종사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자’로 한정하고 있어,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사실상 배제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취재·보도·제작·편성에 참여하는 인력 상당수가 비정규직인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배제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공공성과도 배치된다”며 “이미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인력을 제도에서 제외할 경우 내부 갈등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종사자 대표 선출 방식 역시 향후 주요 쟁점으로 지목됐다. 편성위원회의 권한이 확대된 상황에서 대표성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제도 전반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고려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현재 공영방송사에는 모두 복수 노조가 있는 상황에서 종사자 재적 과반수 찬성에 의한 대표자 선출보다 과반 노조가 대표자를 지정하는 방식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노조 간 가입 경쟁이 격화되고 조직 내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종사자가 투표 등을 통해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종사자와 노조 구성 범위 간 불일치에 따른 혼선 우려도 제기됐다. 종사자는 특정 직무로 한정하면서, 종사자 대표를 지정하는 노조는 보다 넓은 구성원을 포함할 수 있어 제도적 정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종사자 범위는 제한적으로 규정하면서 대표성을 부여하는 주체는 더 넓게 설정하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라며 “제도 설계의 기본적인 정합성이 부족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사 추천 구조를 둘러싼 문제도 제기됐다. 학회·변호사단체·교육단체 등을 통해 이사를 추천하도록 하면서도, 실제 선정 기준과 절차를 방미통위 규칙에 위임한 점이 핵심이다.
안 교수는 “형식적 요건만 갖춘 단체들 가운데 방미통위가 사실상 임의로 선정할 수 있는 구조”라며 “정치적 성향에 따른 단체 선정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학회와 변호사단체 선정 기준을 모법이 아닌 규칙에 맡긴 것은 행정기관 재량이 과도하게 개입될 수 있는 구조”라며 “정권 변화에 따라 규칙이 변경될 경우 제도 안정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문제는 규칙 아닌 모법”…구조적 한계 지적

방미통위는 ▲편성위원회를 추천하는 종사자 범위와 종사자 대표 자격요건 ▲이사 추천 단체(방송미디어학회·변호사단체·교육 관련 단체) ▲여론조사기관 기준(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 구성 관련) 등을 구체화한 후속조치를 마련했다. [사진=방송미디어통신위위원회]
보고서는 이번 논란의 본질이 규칙이 아닌 모법 설계에 있다고 봤다. 세부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상당 부분을 방미통위 규칙에 위임하면서 제도 운영의 불확실성이 구조적으로 내재됐다는 분석이다.
제도 운영을 뒷받침할 핵심 규정들이 상당 부분 빠져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됐다. 편성위원회의 의사정족수·의결정족수, 회의 소집 및 운영 절차, 내부 갈등 조정 장치 등 기본적인 운영 기준이 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사의 자격요건과 결격사유,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 확보 장치, 시청자위원 선임 기준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핵심 요소 역시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현행 법은 제도 운영에 필요한 핵심 기준들이 빠져 있는 상태”라며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 확보나 시청자위원 선임 기준 등 기본적인 장치조차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사의 직무상 독립성과 신분 보장, 사장 면직 절차의 엄격성 등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뒷받침할 핵심 규정들이 미흡하다”며 “이 같은 공백은 향후 운영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사 추천과 위원회 구성 과정이 다수 이해관계자의 합의를 전제로 설계된 점 역시 충돌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안 교수는 “이사 추천 주체 간 이해대립이 심화될 경우 합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이사 선임 절차가 지연되거나 전체 이사회 구성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구조가 반복될 경우 공영방송 지배구조 전반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며 “정권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현재 구조는 제도의 안정성과 공정성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결국 현행 방송3법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단순한 규칙 정비를 넘어 입법 단계에서의 전면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현행 제도의 문제를 방치할 경우 공영방송 지배구조 전반이 정치적 논리에 흔들릴 수 있다”며 “진영 논리를 배제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답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입법부가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제도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날(23일) 열린 공청회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방송 3법 후속 조치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제도 설계’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세부 이행 방안이 현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법 자체가 가진 모호성을 하위 규정으로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기준으로는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시행 과정에서 해석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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