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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뷰] ‘영포티’의 아이돌 돌아왔다…패닉, 20년만에 귀환

조은별 기자

패닉의 이적(왼쪽)과 김진표. [사진=뮤직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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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조은별기자] 18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마곡은 요즘 SNS에서 언급되는 ‘영포티룩’의 40대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이날은 남성듀오 패닉의 20년만의 콘서트 ‘패닉 이즈 커밍’ (Panic is coming)의 세 번째 공연일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곱게 고치던 한 중년여성은 “중학생 아들이 티켓팅을 해줬다”며 지인에게 아들의 효심을 자랑했습니다. 공연장 로비에서 만난 중년 남성은 오랜 시간 간직한 듯한 패닉 3집 CD와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적과 김진표, 두 사람으로 구성된 남성듀오 패닉은 1995년 결성해 2005년까지 10년동안 10장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사랑 노래 일색이었던 가요계에서 패닉은 때로 따뜻한 위로를, 때로 내면의 은밀한 자아를 들여다보는 곡을 들려줬습니다. 반사회적이고 반항적인 면모도 여지없이 드러냈죠. 성적이 떨어진 날, 어두컴컴한 독서실 한구석에서 ‘달팽이’를 들으며 눈물 흘렸던 10대들이 이제 ‘영포티’가 된 셈입니다.

패닉의 이적(왼쪽)과 김진표. [사진=뮤직팜]

하지만 이들의 마지막 공연은 2006년. 그로부터 20년동안 두 멤버는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적은 솔로가수로, 또 시트콤 배우로, 그리고 MBC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예능인과 여러 책의 저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습니다. 김진표 역시 솔로활동과 Mnet ‘쇼미더머니’ MC, 카레이서 등을 거쳐 지금은 가업인 ‘한국 파이롯트’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한때 패닉으로 활동했지만 전혀 다른 성정을 지닌 두사람이기에 팬들조차 패닉의 콘서트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24일, 패닉 콘서트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은 뜨겁게 들끓었습니다. 티켓은 예매 1분만에 전석이 매진됐죠. 20년만에 열리는 공연이지만 선택받은 5400여 명만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공연이기에 오프닝곡인 ‘패닉 이즈 커밍’과 ‘아무도’에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로 맞았습니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좀처럼 패닉 곡의 랩을 들려주지 않았던 김진표가 입을 열자 함성소리가 한층 커졌습니다. 외적으로 완연한 중년이었지만 정확한 딕션이 돋보이는 콕콕 쏘는 래핑과 특유의 묵직한 보이스만은 그대로였습니다.

패닉의 이적(왼쪽)과 김진표. [사진=뮤직팜]

이적은 “올해가 패닉 결성 31주년”이라며 “지난해가 30주년이지만 디녀쇼를 해야 할 것 같아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념하기로 했다”고 이번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진표는 “32년 전, 적이 형이 패닉을 같이 하자고 했을때처럼, 이번에도 같이 무대에 서자고 (형이) 권했다. 20년만에 좋은 에너지로 벅차 오른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공연은 패닉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셋리스트로 구성됐습니다. 이들의 데뷔곡인 ‘아무도’부터 ‘달팽이’,‘왼손잡이’,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히트곡부터 ‘냄새’, ‘혀’, ‘벌레’까지 패닉이라는 팀의 정체성을 진하게 드러낸 곡까지 무대 위에서 고루 들려줬습니다.

때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걸으라고,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를 열어보라고 권했던 이들의 노랫말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자 공연장은 거대한 떼창의 물결로 일렁였습니다.

패닉의 이적(왼쪽)과 김진표. [사진=뮤직팜]

이적은 ‘태엽장치 돌고래’를 부른 뒤 “이 노래는 미래에 대한 타임캡슐같은 노래”라고 소개하며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곡이다. 그때는 뜻을 잘 모르고 썼는데 어떻게 이런 곡을 썼나 싶다”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김진표 역시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랩을 내가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다”고 겸연쩍어했습니다. 그만큼 30년 전 이들의 노래는 센세이셔널한 파격 그 자체 였습니다.

앨범 발매 당시 사전검열로 가사가 삭제된 ‘MAMA’도 원가사 그대로 선보였습니다. 김진표는 “이 곡을 썼을 때는 내가 부모가 될것이라 생각 못했는데 지금은 내 아들이 내가 그 가사를 썼을 때 나이가 됐다”며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관객들은 자녀의 귀를 잠시 막아달라”고 당부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공연에서는 두 사람이 데뷔 전이었던 1994년, 대학로에서 연습하는 ‘희귀’ 영상도 공개됐습니다. 원래 패닉 1집은 이적의 솔로앨범으로 준비됐지만 이적이 동네 동생인 김진표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해 남성듀오로 데뷔했다는 게 가요계의 정설이었죠. 이적은 “원래 패닉은 3인조로 준비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함께 패닉을 준비했던 친구는 사법고시를 거쳐 지금은 변호사가 됐다며 “17일 공연을 잘 관람하고 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패닉의 이적(왼쪽)과 김진표. [사진=뮤직팜]

‘달팽이’에서 들려준 김진표의 색소폰 연주도 감동적이었습니다. 김진표는 이번 공연을 위해 오랜만에 색소폰을 잡았는데 합주 첫날에는 다소 걱정스러울 정도의 실력을 보였지만 나날이 일취월장해 공연 당일에는 예전의 실력을 되찾았다는 후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볼이 빨개질 정도로 연주에 심취한 김진표의 모습을 보니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공연 말미 이적은 “진표를 안지 40년, 패닉 활동을 한지 30년, 마지막 공연을 한게 20년 전이었다”며 “이번 공연을 통해 진표도 부담을 덜었을 것 같다. 앨범이 될지, 공연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패닉으로 팬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김진표 역시 “젊었을 때 인터뷰를 하면 50대에도 랩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꿈이 멀어졌다. 여러분들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며 “모든 것은 적이 형 손에 달렸다”고 덧붙였습니다.

로시난테와 함께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렸던 돈키호테처럼, 지천명의 나이에도 소년의 감성과 청년의 열정을 잃지 않는 두 남자. 이들을 무대에서 다시 보는 날이 곧 올지 모릅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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