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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방임 속 커지는 유료방송 부담…소비자 편익은 어디로

강소현 기자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여러 플랫폼에 콘텐츠를 동시에 공급하는 ‘멀티호밍’ 확산으로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지만 콘텐츠 사용료는 여전히 사업자 간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시장 자율’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가격과 구조를 제한하는 이중 규제가 유지되면서, 경쟁 효과가 소비자 편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들은 유료방송 플랫폼뿐 아니라 복수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도 콘텐츠를 중복 편성하는 ‘멀티호밍’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멀티호밍은 동일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공급하는 유통 전략이다. 실시간 채널과 OTT에 동시 공개하거나 OTT에 선공개·독점 공급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2025년 기준 지상파·종편·tvN 계열 채널은 총 1455개 프로그램을 유료방송과 OTT에 동시 공급하고 있으며, 이 중 43.7%(636개)는 2개 이상의 OTT에 제공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1개 프로그램은 4개 이상의 OTT에 동시 공급했다.

이처럼 멀티호밍이 일반화된 시장에선 플랫폼 간 경쟁이 심화되며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이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내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국내 시장에선 콘텐츠 사용료가 시장 원리가 아닌 사업자 간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며 이러한 경쟁 효과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OTT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기존 거래 구조가 유지되면서 비용 부담이 특정 사업자에 집중되는 구조적 왜곡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사업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 여력을 제약하는 지배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멀티호밍 확산으로 콘텐츠의 배타성은 낮아졌지만, 유료방송 사업자가 PP에 지급하는 콘텐츠 사용료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료방송 사업자와 PP 간 방송 채널 전송권과 대가가 결정되는 방송채널거래시장 매출액은 2023년 기준 1조4940억원으로 전년 대비 9.3% 증가했다. 지상파PP의 재송신료 매출 증가 영향이 컸으며, 지상파방송 재송신료(CPS)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3% 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책임론도 커지고 있다. 학계에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콘텐츠 사용료 문제를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정작 요금 규제 등으로 시장의 자율 조정 여지를 제한해 왔다는 지적이다. 자율을 표방하면서도 자율이 작동하지 않는 ‘이중 구조’가 시장 왜곡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예컨대 2022년 유료방송 요금 승인제가 신고제로 완화됐지만 ‘수리’를 전제로 한 신고제로 인해 실질적인 요금 자율화는 제한적이다. 신고 이후에도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해 실제 요금 변경으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유료방송 사업자는 콘텐츠 사용료 인상분을 요금에 반영하거나 상품을 유연하게 구성하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경쟁력이 낮은 채널을 제외하지 못하고 동일 콘텐츠를 반복 송출하는 채널에도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PP 역시 블랙아웃(송출 중단)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송출 중단 가능성이 거론될 경우 정부가 중재에 나서 갈등이 일시적으로 봉합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다만 근본적인 해결 없이 협상이 유예되면서 유사한 분쟁이 매년 되풀이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해외 사례는 다소 다르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완화된 시장에서는 상품 구성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다. 대만은 2020년부터 소비자가 원하는 채널만 선택해 구성할 수 있는 ‘알라카르테(a la carte)’ 상품을 도입했다. 기존의 채널 묶음형 요금제에서 벗어나 선택권을 강화한 것이다.

실제 대만에서는 소비자의 71%가 기존 일괄 요금제보다 선택형 요금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필수 채널에 대한 기본 요금만 지불하고, 원하는 콘텐츠만 추가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역할 재정립 또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방송업계 전문가는 “PP는 제작비 상승을 이유로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유료방송 사업자는 OTT 납품 확대 과정에서 증가한 비용이 자신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최근 제작비 상승 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케이블TV는 홈쇼핑 송출수수료 감소로 수익 기반까지 약화된 상황”이라며 “현 구조에서는 채널 축소 등 제한적 대응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채널 제외나 블랙아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가격이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시장 자율이 아니라 협상 구조의 실패”라며 “시장에 맡길 것이라면 완전한 자율을 보장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최소한의 제도적 중재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강소현 기자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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