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르포] 밖에선 삼보일배, 안에는 텅 빈 매대…홈플러스에 무슨 일이

왕진화 기자 , 장주영 기자

지난 4월15일 찾은 홈플러스 중계점. 퇴근길 무렵인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 [사진=장주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장주영기자]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정부 개입을 촉구하며 삼보일배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시내 홈플러스 매장 안에서는 신선식품이 사라진 자리를 프라이팬과 자체브랜드(PB) 상품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디지털데일리>가 현재 운영 중인 합정점·월곡점·중계점·상봉점을 찾은 결과, 기업회생 절차 1년을 넘긴 홈플러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4월16일 오전 찾은 홈플러스 상봉점 매대엔 저장 기간이 긴 스낵류나 잼, 기름류부터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용품들까지 PB상품으로 가득했다. [사진=장주영 기자]

◆비어가는 매장, 채워지는 ‘심플러스’= 이날 오전 찾은 홈플러스 상봉점. 냉장고에는 신선식품 대신 프라이팬과 밀폐용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냉장이 필요 없는 상품들이 냉장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기묘한 배열이었다.

저장 기간이 긴 잼과 통조림, 기름류 역시 홈플러스 자체브랜드(PB) 심플러스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플러스 황도 통조림과 딸기잼, 심플러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도 끝없이 이어졌다.

스낵류 코너 곳곳에도 심플러스 쁘띠 치즈케이크와 쁘띠 초코케이크, 요거트맛 샌드와 감자칩이 진열돼 텅 빈 자리를 채웠다.

지난 4월15일 오후 찾은 홈플러스 중계점. 매장 내 입점한 점포(오른쪽 사진 하단) 관리도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진=장주영 기자]

앞서 지난 15일 오후 6시 30분경 찾은 홈플러스 중계점의 풍경은 더 낯설었다. 퇴근 시간대임에도 매장은 한산했고, 인기척이 적은 공간은 어딘가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익숙한 구조지만 비어 있는 이른바 ‘백룸(익숙한 공간이지만 텅 비어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상의 공간)’을 연상시켰다.

상봉점과 마찬가지로 냉장고 안에는 신선식품 대신 생활용품이 자리를 대신 채웠고 채소 코너 에도 버섯과 배추 사이에 벌꿀과 보관 용기, 밀폐 용기가 섞여 진열돼 있었다.

입점 점포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중계점 내 한 입점사 관계자는 “이미 8년 전에 방을 뺀 음식점인데도 들어오겠다는 점포가 없어 그대로 방치됐다”며 “2018년에 사라졌는데 아직도 치우지 않은 공간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매장 안에 시간이 멈춘 듯한 구역이 남아 있었다.

지난 4월1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 전반적으로 매장은 한산했으며 우유 코너에 심플러스 옥수수수염차가 진열돼(오른쪽 사진 아래) 판매되고 있었다. [사진=왕진화 기자]

◆손님보다 크게 들리는 음악, 그리고 남은 것들=합정점이나 월곡점의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합정점은 거대한 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생활용품 매장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매장에 흐르는 배경 음악이 유독 크게 들렸다. 사람이 빠진 자리를 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우유 코너와 음료, 주류 코너는 심플러스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로 채워져 있었다. 선택의 폭은 좁았고, 진열은 단조로웠다. 델리코너에는 팔리지 않은 음식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신선식품 매대는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16일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간 월곡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하 1층 식료품 매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물건이 채워진 듯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매대 앞줄만 제품이 놓여 있고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사실이 진열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매장은 여전히 운영 중이었지만, ‘고르는 재미’는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4월16일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한 월곡점.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채칼부터 보관통까지 신선식품 매대에 함께 진열돼 있었고(오른쪽 사진 상단), 와인 코너에도 심플러스 옥수수수염차와 보리차가 한껏 진열돼 있었다. [사진=왕진화 기자]

소비자들의 체감도 비슷했다.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에 거주하는 김모(39)씨는 “평일 오픈 시간대더라도 원래 같았으면 사람이 이 정도로 적지는 않았었다”고 말했다.

이어 “와인 매대에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가 있어 여러모로 홈플러스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한 눈에 느껴진다”며 “요즘은 물건이 많이 없어서 이마트 하월곡점도 가고 한다”고 덧붙였다.

네 곳 모두 고객들이 많이 찾는 신선식품 코너는 현저히 비었고 냉장고가 냄비와 프라이팬으로 채워진 점이 눈에 띄었다. 매대와 고객이 줄어든 공간과 직원들의 모습은 더욱 대비됐다. 매장 곳곳에서는 진열을 정리하거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매장 밖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민주노총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는 16일 오전 마포구 애오개역 인근에서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정부 개입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집회를 열었다.

전날 국회 앞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약 10㎞를 이동해 다시 청와대 사랑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정부는 홈플러스 정상화 약속 이행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힘겨운 삼보일배를 펼쳤다.

2015년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이후 매각 실패와 현금 흐름 악화가 이어지면서 점포 폐점과 대금·임금 정산 지연 문제까지 겹쳤다. 노조는 김병주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다만 기업회생 절차가 1년 넘게 이어지는 사이 현장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매장 안에서 만난 직원들은 말을 아꼈지만 비어가는 매대와 줄어드는 고객 수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장을 보러 온 고객보다 자리를 지키는 직원들의 움직임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공간. 그 간극이 지금의 홈플러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4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마트산업노조원들이 청와대를 향해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2026.4.15[사진=연합뉴스]

왕진화 기자 ,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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