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계

전쟁은 이제 '생산 속도' 싸움…적층제조, K-방산 판 바꿀까

김유진 기자

정다영 방위사업청 기술도전과 서기관이 4월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심토스(SIMTOS) 2026'의 '제조 AX 혁신 컨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유진기자]

[디지털데일리 김유진기자] 앞으로 전쟁은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닌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 중동 사태 등 잇따른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필요한 순간 현장에서 즉각 무기를 찍어내는 '적층제조' 기술이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조 AX 혁신 컨퍼런스'에서는 적층제조를 통한 국방 분야 디지털 제조 역량 강화가 핵심 화두로 제시됐다.

이날 강연에 나선 정다영 방위사업청 기술도전과 서기관은 현재 세계 안보 환경을 '공급망이 무기화된 시대'로 규정했다. 최근 중동 사태로 주요국이 수출 통제와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면서 단 하나의 부품 수급 차질이 방위력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서기관은 "제조 혁신이 곧 국가 안보이자 강력한 억제력"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K-방산은 최근 5년간 수출 증가율 387%를 기록하며 고속 성장 중이지만 무기 체계에 활용되는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는 약 99%에 달하는 등 공급망 취약성이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지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부품 국산화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약 1340억원을 편성했다. 공급망 안정화 선도 사업자 지원을 신설해 기업당 최대 50억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추진한다. 2030년까지 2조6000억원을 투입해 국방 반도체,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등 첨단 기술 개발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이를 통해 국방 반도체 국산화율을 현재 1% 수준에서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 방산 혁신 이끌 '적층제조'…설계 단계부터 전제해야

적층제조란 디지털 모델을 기반으로 재료를 층층이 쌓아 물리적 부품을 만드는 제조 방식이다. 이 같은 적층제조 기술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수개월 걸리던 장비 수리를 수 시간 내로 단축하고 글로벌 항공기업들이 엔진 부품 경량화에 적극 활용하는 등 전장과 산업에서 이미 실효성을 입증했다.

국내에서도 KF-21 전투기 설계 단계부터 적층제조가 적용되며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정 서기관은 "부품 국산화 과제 212개 중 적층제조 관련 과제는 5개에 불과해 약 3%에도 못 미친다"며 "적층제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투자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 배경에는 고가의 초기 투자 비용, 일반화된 공정 인증 기준 부재, 그리고 외국산 부품과 완전히 동일한 형상만을 요구하는 경직된 국산화 사업 방식이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적층제조를 전제하는 구조 전환이 제시됐다. 기존 부품의 사후 복제가 아닌 신규 무기체계 개발 초기부터 적층제조 특화 설계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서기관은 "디지털 설계 도면을 자산화해 필요시 즉시 생산하는 온디맨드(On-demand·수요 중심형) 보급 체계 역시 구축해야 한다"면서 단기 대안으로는 '상생협력형 부품 국산화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정부와 체계기업이 공동으로 기술 개발에 참여해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시험·인증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다.

정 서기관은 "기술이 전장의 판도를 바꾼다면 제도는 그 기술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라며 "방사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제조 혁신을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유진 기자
euge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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