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방송진흥은 ‘시시포스 형벌’인가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시시포스는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리지만, 도달하는 순간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끝없이 반복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 형벌이다. 최근 방송 진흥 정책이 작동하는 방식이 이와 다르지 않다.
방송 진흥 정책은 정부 연구반을 통해 설계되지만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듬해면 이름만 바꾼 연구반이 다시 꾸려지는 식이다. 업계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수년 동안 출입처를 옮겼다 돌아와도 이 시장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냉소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최근 5년간 흐름을 보면 동일한 의제를 중심으로 한 연구반이 매해 반복적으로 구성되며 유사한 결론을 되풀이해왔다. 참여 주체와 논의 구조 역시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OTT 법제도 정비나 미디어 시장 분석 등 환경 변화를 반영한 연구도 이어졌지만 정책으로 연결된 사례는 제한적이다.
예컨대 편성 규제 완화는 2021년 전면 개편 논의를 시작으로 2023년 영향 분석, 2025년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세 차례 이어졌고, 방송광고 규제 역시 네거티브 규제 도입 이후 시청자 보호, 규제체계 전환 논의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반복이 단순한 논의 축적이 아니라 정책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반이 외부 용역과 전문가 참여를 전제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일한 논의가 반복되는 동안 재정 투입만 누적되는 구조다. 결과 없이 설계만 반복되는 상황에서 정책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시장 이해관계가 복잡할수록 부처의 조율과 실행력이 중요하지만, 실제 논의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변화를 만들기보다 기존 규제 틀에 머무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위원장 청문회에서도 확인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규제에 더해 방송 진흥 업무까지 소관하게 됐지만, 회의록을 보면 ‘진흥’ 언급은 26차례에 그친 반면 이용자·청소년 보호와 규제 관련 언급은 각각 40차례, 90차례 이상에 달한다. 정책 논의의 무게 중심이 여전히 산업 성장보다 관리와 규제에 쏠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정부의 우유부단함 속에 방송 시장이 이미 구조적 위기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으로 미디어 생태계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법은 여전히 기존 방송사업자 중심 규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실제 현장의 반응은 더 냉정하다. 최근 케이블TV 업계는 경영난을 호소하며 정책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책 당국의 명확한 답변이나 후속 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산업 위기 신호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책은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여당과 방미통위의 책임은 특히 무겁다. 방미통위는 방송 정책 정상화를 내세워 출범했지만 위원회 구성 지연으로 정책 공백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이 산업의 부담은 고스란히 현장에 전가됐다.
이제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남은 것은 산업 전반의 진흥에 최소한의 우선순위를 두고 정책을 실제로 작동시키려는 정부의 리더십이다.
방미통위가 의결 정족수를 채운 지금 더 이상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이 할 일은 분명하다. 이번에는 바위를 내려오지 않게 붙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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