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전문가기고] AI 정의 차량 시대(AIDV),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경쟁이 시작됐다

김용춘 애브넷(AVNET) 코리아 지사장

AI와 소프트웨어기반차량(SDV)이 결합된 ADIV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사진=애브넷코리아]

한국 자동차 산업이 중요한 구조적 전환점에 서 있다. 지난 10년간 산업의 중심이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에 있었다면, 이제 경쟁의 무게추는 AI 정의 차량(AIDV)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차량의 인지와 의사결정, 맞춤형 서비스, 예측 유지보수까지 차량의 핵심 기능이 AI에 의해 설계 단계부터 결정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이미 수치로 확인되는 흐름이다.

AI의 상용화, 이제 시작이 아닌 현실로

애브넷(Avnet)이 발표한 글로벌 엔지니어링 조사 ‘Avnet Insights 2025–2026’에 따르면 AI 도입은 더 이상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전 세계 엔지니어의 56%가 이미 AI가 통합된 제품을 출시했으며, 추가로 33%는 AI 기반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조 기업의 약 90%가 이미 AI를 적용했거나 곧 도입할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한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엔지니어의 96%는 향후 3~5년 내 AI 도구가 제품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AI가 엔지니어링 의사결정과 설계 프로세스 전반에서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별 AI 도입 속도 격차

조사 결과는 지역별 AI 도입 속도의 차이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의 경우 제조사의 85%가 이미 AI 기반 제품을 출시해 글로벌 평균(56%)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정부 정책 지원과 대규모 산업 투자, 그리고 빠르게 성장한 AI 생태계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한국 역시 반도체, 전장 부품, 자동차 제조 기술 등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기반을 공급망 전체로 확장하고 중소 협력사까지 포함하는 AI 정의 차량(AIDV)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SDV에서 AIDV로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이 차량 기능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개선할 수 있는 구조라면, AI 정의 차량(AIDV)은 차량 자체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적응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AI는 차량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센서 융합을 통한 주변 환경 인식, 운전자 상태 모니터링, 배터리 수명 예측, 열 및 전력 관리 최적화, 개인화된 운전 경험 제공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제조사의 64%가 멀티모달 AI 아키텍처를 주요 기술 전략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하나의 시스템에서 여러 AI 및 머신러닝 모델을 결합해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이다. 교통 밀도가 높고 복잡한 도시 환경을 가진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는 이러한 다중 데이터 기반 AI 시스템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엔지니어링이 마주한 새로운 과제

글로벌 엔지니어의 77%가 시장 환경 개선을 체감하는 등 산업 전반의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도 분명하다. 가장 큰 기술적 장벽은 데이터 품질 문제다. 도시 밀도, 교통 패턴, 기후 조건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데이터 확보가 AI 의사결정 정확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운영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라이프사이클 관리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시스템은 차량의 전체 수명 동안 유지·업데이트·검증 과정을 반복해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엔지니어링 프로세스가 요구된다. 여기에 전력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 문제도 더해진다. 고성능 AI 프로세서는 높은 전력을 소비하고 상당한 열을 발생시킨다. 이는 전기차 주행거리와 열 관리 효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한국의 전략적 위치

한국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온디바이스 AI 반도체에 대한 정부 투자, 전국 단위 5G 및 V2X 네트워크, 빠른 전기차 보급 등 여러 강점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력을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전반에 걸친 AI 정의 차량(AIDV)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대형 제조기업은 빠르게 AI를 도입하고 있는 반면, 중소 협력사는 첨단 프로세서 접근성, 전력 효율 설계,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중 속도(two-speed)’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한국 산업의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실행의 시간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에서 AI 정의 차량(AIDV)으로의 전환은 이미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전반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멀티모달 AI 아키텍처, 지역 맞춤형 데이터 전략, 에너지 효율 중심의 설계는 차세대 모빌리티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Avnet Insights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AI 도입은 더 이상 실험 단계가 아니라 실제 엔지니어링 의사결정과 생산 일정, 차량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됐다. 한국은 이미 기술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2026년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AI 정의 차량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지금 내려지는 전략적 선택이 향후 10년간 한국 지능형 모빌리티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김용춘 / 애브넷(AVNET) 코리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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