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권 균열上] 흔들리는 ‘황금알’ 위상…올림픽은 지속 가능한가
JTBC의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 단독 중계를 두고 보편적 시청권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상파3사와의 재판매 협상 결렬로 책임 공방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다만 이번 사태를 단순한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과 광고시장 위축 속에서 기존 방송 중심의 국내 스포츠 중계권 시장은 격변의 기로에 섰다. 당장 오는 여름 북중미 월드컵이 예정된 가운데 본 기획은 갈등의 책임을 따지기보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중계권 제도와 시장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그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JTBC의 단독 중계를 계기로 지상파와의 스포츠 중계권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재판매 협상 결렬 이후 논쟁의 초점은 ‘보편적 시청권’에 맞춰졌지만 업계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포츠 중계권이 여전히 방송사에 ‘황금알’로 기능하고 있냐는 물음이다.
◆ 반복되는 단독 중계 갈등…“보편적 시청권=이익을 대변하는 언어”
스포츠 단독 중계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96년 KBS의 AFC 아시안컵 단독 계약,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중계, 2001~2004년 MBC의 메이저리그 중계, 2010~2016년과 2018~2024년 SBS의 올림픽·월드컵 중계 이르기까지 중계권 독점에 따른 갈등은 반복됐다. 그때마다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한 측을 중심으로 ‘국부 유출’과 ‘보편적 시청권’ 같은 논리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당장 SBS가 올림픽 중계권을 단독 확보한 2010년 당시 KBS는 “중계권 가격을 터무니없이 부풀리며 자사 이익만 추구한다”고 비판했고, MBC는 “시청자의 보편적 시청권을 무시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후 SBS는 2012년부터 공동 중계로 선회했다. 업계에서 이러한 갈등을 단순한 명분 싸움이 아니라 향후 재판매 협상에서의 협상력과 직결된 구조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한 미디어 업계 전문가는 “단독 중계는 시장 계약의 결과”라며 “보편적 시청권 침해는 공익 규범의 문제로 단독 중계와 같은 선상에 놓으면 논리적 과잉이 생긴다. 현재 ‘보편적 시청권’은 결국 자사 이익을 대변하는 언어로 활용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황금알은 옛말…스포츠 중계권 수익 모델 시험대
단독 중계가 가지는 높은 리스크에도 불구 방송사가 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배경엔 ‘광고 매출’이 있었다.
그간 스포츠 중계권의 수익 공식은 ‘광고 판매’와 ‘재판매 수익’이라는 두 축에 기반해 왔다. 광고 단가가 유지되던 시기엔 광고 매출만으로도 상당 부분의 중계권료를 회수할 수 있는 구조였다.
실제 SBS의 남아공 월드컵 중계 당시 한 증권사는 광고 판매 예상액을 1197억원으로 추산했다. SBS가 계약한 4개 올림픽 중계권료는 총 7250만달러, 2개 월드컵 중계권료는 1억4000만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제작비 등을 감안하더라도 광고 수익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최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코바코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방송 광고비는 전년 대비 5% 감소한 반면 온라인 광고비는 증가세를 보였다. 광고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상승한 중계권료를 광고만으로 상쇄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종관 전문위원은 “방송미디어 시장이 위축되면서 스포츠 이벤트를 활용한 킬러 콘텐츠 전략은 오히려 늘고 있다”면서도 “광고 시장 축소로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수익 기여도는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구조는 승자의 저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미디어 환경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방송 중심의 중계권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시청자, 방송시장, 스포츠계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재판매에 건 승부수…JTBC의 실험은 왜 실패햇나
이처럼 광고 기반 수익 구조가 흔들리면서 방송사 역시 중계권 투자 회수도 재판매 등 다른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됐다.
이에 JTBC 역시 재판매를 통한 수익 회수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광고 수익이 위축된 지상파 역시 높은 재판매 비용을 감당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광고와 재판매라는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 속에서 양측의 계산이 엇갈렸다는 분석이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JTBC는 적자와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상황에서도 5000억~7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거액을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 확보에 투입했다”며 “이는 중계 자체의 광고 수익보다는, 지상파 재판매를 통해 수익을 회수하겠다는 ‘플랫폼 레버리지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 모델은 지상파가 결국 재판매를 수용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되는데 협상 결렬이라는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면서 JTBC에도 상당한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과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지상파가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은 배경에는 단순한 비용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라며 “개별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중계권을 확보하더라도 실질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성공적 미디어 조직, 이미 중계 경쟁 시작됐음 알아”
이처럼 스포츠 중계권 시장의 수익 모델이 구조적 전환기에 접어든 가운데, 전문가들은 변화한 환경에 부합하는 전략적 재정비 없이는 중계권 투자 리스크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업계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방송사들이 스포츠 중계권 확보 자체를 기피하는 상황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안으로는 OTT 등 플랫폼과 결합해 가입자를 유입·고정하는 확장 모델이 거론된다. 미국 슈퍼볼 주관 방송사인 NBC가 대표적 사례다.
NBC는 지상파 무료 중계와 자사 OTT인 피콕(Peacock) 스트리밍을 병행하며 대규모 광고 수익과 플랫폼 가입자를 유치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19일(현지시각) 닐슨에 따르면 최근 슈퍼볼은 평균 1억2493만명의 시청자를 기록했고, 이 가운데 1억2163만명이 NBC와 피콕을 통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무료 개방은 선의가 아니라 경제적 구조의 결과로 대규모 동시 시청을 전제로 한 광고 모델이 개방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유료 스트리밍 가입자를 키우는 유입 경로도 됐다”며 “이젠 누가 중계하느냐보다 어떤 규칙과 가격 구조 속에서 중계권이 거래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는 “NBC는 피콕을 통해 스포츠 중계를 단순 편성 콘텐츠가 아니라 가입자 유입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며 “유입된 이용자를 추가 콘텐츠로 붙잡고 이를 플랫폼 경쟁력 강화로 연결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이들은 중계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 사전에 전략을 논의하고 제시한다”며 “반면 국내의 경우 고가의 중계권을 확보하고도 이를 젊은 시청층 유입이나 ‘스포츠 허브’ 구축 등 플랫폼 전략으로 확장하기보다 여전히 선형방송 중심 활용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시장에선 스포츠 중계를 단순 편성 콘텐츠가 아닌 각사의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미디어 기술기업 베리톤(Veritone)의 최고수익책임자 션 킹은 최근 기고문에서 “2028년 전 세계의 시선이 로스앤젤레스로 향할 것”이라며 “성공하는 미디어 조직은 이미 이 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이해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그는 단순한 반응형 보도를 넘어 보다 개인화된 콘텐츠 전략을 구축하는 조직만이 지속 가능한 올림픽 유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민적 이벤트라는 상징성에만 기대어 과거의 수익 공식을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방송사는 물론 올림픽 중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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