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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vs 대수양…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소환한 아픈 역사, 당신의 생각은?

이안나 기자
‘왕과 사는 남자’ 메인 포스터 [사진=쇼박스]
‘왕과 사는 남자’ 메인 포스터 [사진=쇼박스]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이번 설 연휴의 화제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인 듯하다.

유해진·박지훈 주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설 연휴 극장가를 장악하며 개봉 10여일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손익분기점인 260만명은 16일 넘어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설 연휴에 개봉된 국내 영화들중 화제성에서 단연 압권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가 강원도 영월의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0만 돌파를 기념해 공개된 어진 포스터 [사진=쇼박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0만 돌파를 기념해 공개된 어진 포스터 [사진=쇼박스]

◆역사속 단종, 그리고 500년후의 재해석 이광수 vs 김동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놓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놓고 이런 저런 해석이 많다. 무엇보다 단종이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해석도 크게 엇갈린다.

세조실록(세조 3년, 1457년 10월)에 따르면, 단종이 유배지 영월에서 막내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발각돼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고 짧게 기록한다.

조선시대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현미경처럼 들어다 본 '승정원 일기'에도 단종의 죽음을 명확하게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은 없다.

물론 임진왜란 등 전란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사료들이 많이 소실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단종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 해석이 후세까지 민감하게 영향을 미쳤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단종이 왕으로 복위된 200여년 뒤, 숙종 실록에선 전혀 다른 내용이 등장한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갔으나 차마 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는 것과 이후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총절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자살이 아니라 '단종이 세조로 부터 사약을 받고 사사(賜死)됐다'로 정정된 공식 기록인 것이다.

'감히 누구도 단종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어 머뭇거리는 와중에 하인 중 하나가 단종의 목을 문지방 뒤에서 활줄로 잡아당겨 교살(絞殺)했다'는 것은 야사에 나오는 내용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후세의 대중들은 '단종이 자살했다'는 세조 실록의 기록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교살된 후 강물에 던져졌다'는 야사에 더 공감한다.

이 때문에 '단종'이라는 비극적 서사는 20세기 들어와서도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당신 슬픈가?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투영된 '단종'

그러나 다소 놀랍게도, 단종을 슬퍼하고 수양대군을 천하의 악인으로 묘사하는 일방적 시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대상에 따라 정반대의 시선도 존재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런점에서 20세기 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계의 거장 춘원 이광수과 금동 김동인의 소설이 소환된다.

두 사람은 소설을 통해 전혀 상반된 시각으로 계유정난과 단종의 죽음까지의 숨가쁜 정변 과정을 재해석한다.

이광수는 '단종애사'(端宗哀史)를 1929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이 소설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제목은 말 그대로 단종의 슬픈이야기(哀史)이다. 지금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미지화된 단종의 비극은 이 소설이 모티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종애사'는 힘없지만 고결한 어린 임금과 그를 지키려는 충신들, 그리고 이를 짓밟는 압도적인 악(수양대군)의 대결 구도로 그려진다.

이후 '단종애사'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제에 나라를 허망하게 잃은 국민들의 슬픔이 단종의 처지에 깊게 투영됐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1941년, 김동인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소설을 내놓는다.

그는 '대수양'(大首陽)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당시 '조광'이라는 잡지에 연재한다. 제목 그대로 '위대한 수양대군'이란 의미다.

수양대군이 단순히 왕위가 탐나서 조카를 죽인 게 아니라 '나약한 왕실로는 조선의 미래가 없다'는 판단하에 거사를 일으켰다고 묘사한다. 즉, 수양의 찬탈을 '국가를 위한 결단'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특히 악인으로 묘사됐던 수양대군을 고뇌하는 지성인이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로 그린다. 반면 단종은 왕위에 어울리지 않는 무능하고 나약한 인물로 묘사되면서 수양대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당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통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마치 고려 몰락의 원인이 된 권신과 외척들에 의해 왕권이 몰락했을 것이란 논리다.

물론 소설 '대수양'은 이후 비판을 받는다. 나약한 단종 대신 새시대를 열어갈 강력한 리더의 힘이 필요했다는 식의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는 당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나약했던 조선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과연 어떤 것이 맞는 해석일까.

결론적으로 어리석은 질문일 뿐이다. 역사의 있어 정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달라지면 관점과 해석도 달라진다.

어쩌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대중들이 더욱 애틋함을 느끼는 것 또한 지금 시대상의 반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많이 관람객이 쏟아낸 영화 감상평중 대부분은 '눈물을 쏟게 만드는 슬픈 단종의 눈'에 대한 것이었다.

지나친 경쟁 사회가 주는 두려움과 공포, 양극화의 심화,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지는 요즘이다.

영화에서 얼굴이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수양대군, 그리고 과거와는 다르게 거대한 풍채로 그려진 한명회는 어쪄면 우리에게 그런 공포의 투영이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AI(인공지능)의 공포까지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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