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무역 무기화' 위협 가중, 대응 해법은?… "OLED 등 고의존 품목 전략적 활용"
[디지털데일리 배태용기자] 중국이 무역과 시장 접근을 외교·안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이 이미 구조적 위협 단계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단순한 통상 분쟁이나 보호무역을 넘어 국가의 주권적 선택 자체를 흔드는 전략적 압박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빅터 차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담당 소장이자 조지타운대 석좌교수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최종현학술원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최근 출간한 저서 '중국의 무역 무기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차 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은 시장 접근이나 공정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국의 정치적 선택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라며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회복력과 직결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차 교수가 정의한 '경제적 강압'은 보호무역이나 일반적인 통상 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민주주의·인권·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발언이나 정책 선택을 위축시키기 위해 무역과 투자를 활용하는 행위라는 설명이다. 그는 "중국은 제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문서로 남기지도 않는다"며 "전화나 구두 지시를 통해 '종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1997년 이후 최소 600건 이상의 경제적 강압 사례를 통해 18개국, 470개 기업을 압박해 왔다. 미국 기업이 278곳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59곳), 한국과 대만(각각 33곳)도 주요 대상에 포함됐다. 특히 시진핑 집권 이후 관련 사례는 급증했다. 그는 "이 수치는 실제 규모를 과소평가한 것"이라며 "보복을 우려해 피해를 공개하지 않는 기업과 정부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의 구조적 취약성부터 봐야… OLED는 전략 자산 될 수도"
중국식 경제 압박의 공통된 특징으로는 비공식·비공개 방식, 명확한 법적 근거 부재, WTO 제소가 어려운 수단 활용이 꼽혔다.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 중단, 일본에 대한 희토류 압박, 한국에 대한 단체관광 중단 조치가 모두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차 교수는 방어적 대응을 넘어 중국의 구조적 취약점을 역으로 식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유엔 국제무역정보센터(UN Comtrade) 2024년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589개 품목에서 수입 의존도가 70%를 넘고 있으며 이 가운데 259개 품목은 의존도가 90%를 상회한다.
특히 OLED 디스플레이 패널의 경우 중국의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수입하는 OLED 패널의 상당 부분이 한국산이라는 점에서 동맹국 간 공조가 이뤄질 경우 실질적인 레버리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산 비고리형 탄화수소, 일본산 산업용 로봇과 은분(태양광 패널 핵심 소재) 역시 중국이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려운 고의존 품목으로 지목됐다.
차 교수는 "개별 국가는 취약할 수 있지만 연합하면 중국에 실질적인 압박 수단을 가질 수 있다"며 "상호의존성의 비대칭을 활용해 중국의 무역 무기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억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각국이 추진하는 디리스킹(de-risking), 즉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대해서도 차 교수는 한계를 짚었다. 그는 "한 공급망을 지키면 중국은 다른 공급망을 공격한다"며 "문제는 대응이 아니라 억지(deterrence)"라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제시한 개념이 '집단적 회복력(collective resilience)'이다. NATO의 집단방위 논리를 경제 영역에 적용해 특정 국가가 경제적 강압을 받을 경우 동맹국들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신뢰성 있는 약속을 사전에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그는 "각국이 모든 품목을 방어할 필요는 없다"며 "각자가 하나의 핵심 취약 품목을 맡아 공동 억지력을 구성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유럽연합의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사례로 들며 "2023년 말 제도 도입 이후 중국의 유사 행위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억지의 효과는 실제 사용이 아니라 사용될 수 있다는 신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동북아와 인도·태평양에는 아직 이런 장치가 없다"며 "한국은 기술력과 공급망 위상을 동시에 갖춘 국가로 미국·일본과 함께 집단적 경제 억지를 논의할 충분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어진 대담에서 차 교수는 과거 회자되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이제는 지속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과 공급망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분명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희토류 등 일부 핵심 품목에서는 여전히 중국 의존이 남아 있으며 이것이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집단적 경제 억지를 "무역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한 전략"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핵 억지가 핵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듯 경제 억지는 경제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그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며 "동맹을 압박하는 전략이 아니라 동맹을 결속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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