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진 칼럼] 두 표와 세 표 차이
글: 김국진 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미국에도 공영방송이 있어요?
1967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공영방송법(Public Broadcasting Act)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공영방송을 지원하기 위해 공영방송공사(CPB :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를 설립하고 교육용 라디오·TV 방송 지원,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독특한 점은 CPB가 직접 방송을 제작하거나 제공하지 않고 의회로부터 받는 예산 지원과 각종 기부금을 통해 약 360개의 텔레비전 방송국과 1200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지원하는 체계이다.
로컬 TV 공영방송국은 로컬 뉴스와 쇼 그리고 PBS가 제공하는 전국적인 뉴스와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로컬 공영라디오방송은 로컬 뉴스와 쇼 그리고 라디오 전문 공영방송(NPR)이 제공하는 전국적인 뉴스와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따라서 미국의 공영방송체계의 핵심은 공영방송공사인 CPB이다.
CPB에 대한 예산은 하원 및 상원 예산위원회의 노동, 보건복지, 교육 및 관련 기관 소위원회의 관할을 받는다. 1975년부터 의회는 1년 예산 주기의 압박을 벗어나 장기 프로그램 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CPB에 2년치 선불 예산을 제공해 왔다.
이것은 본래는 공화당 정권인 포드 백악관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간 예산 편성 주기에서 벗어난 5년 단위의 승인 및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던 것을 의회에서 2년으로 조정하여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공영방송체계의의 핵심인 공영방송공사가 해산되다
지난 1월 5일, CPB 이사회는 조직해산을 결정했다. 그리고 1월 29일 CPB의 CEO인 패트리샤 해리슨은 조직의 마지막 이사회 회의에서 마지막 발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영 미디어가 미국 시민 생활에 여전히 필수적이기 때문에 CPB의 최종 행동은 더 큰 선을 위해 해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CPB가 자금없이 오래 존재하려 할수록, 이미 지원 자금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은 공영미디어 시스템에 도달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였다. 올해로 87세인 해리슨은 2005년에 CPB의 CEO가 된 인사이다.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2005년에 CEO가 된 해리슨이 어떻게 20년간 계속 그 자리를 맡아 역할을 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2005년은 공화당 부시 정권이었다. 임명 당시에 공화당의 정통 당료 출신을 공영방송공사 수장에 앉히는 것이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정치적 알박기'라는 비판이 민주당에서 나왔다. 그러나 해리슨은 민주당이 집권한 오마바 정권 때나 바이든 정권 때도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1967년 공영방송법이 만들어준 CPB의 독특한 지배구조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외풍을 막는 이사회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CPB는 정부 부처가 아닌 비영리 민간 법인이다. CPB 이사회는 대통령이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는 9명의 이사로 이뤄지지만 이들은 교차적으로 임명되고 법적으로 특정 정당이 과반을 넘지 못하도록 구성된다.
예를 들어 이사회가 9명이고 각각이 현재 공화당 성향이 5명, 민주당 성향이 4명이라면 이미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했으므로 추가로 공화당 성향을 임명할 수 없다. 따라서 공석이 생기면 대통령은 반대 성향 인사를 지명해야 법적 요건을 충족한다. 반대로 민주당 성향이 5명이라면 새로 임명되는 인사는 공화당 성향이어야 한다.
그리고 CEO의 해임 및 임명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바로 이사회에 있다. 해리슨은 공화당과 민주당 이사 양측으로부터 공영방송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예산을 방어할 적임자라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유임될 수 있었다.
해리슨은 정치적 논란이 일 때 내용으로 승부를 걸었다.
그는 교육 콘텐츠와 역사 보존에 집중했다. 한편으로는 미국 공영 미디어 아카이브(AAPB)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공영방송이 미국의 역사를 보관하는 창고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영방송은 정치가 아니라 아이들의 학습과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논리를 일관되게 밀어붙여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으로부터 공영방송의 본질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그러면 CPB 해산 이후 미국의 공영방송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예산 환수와 CPB 해산으로 인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미국 전역의 농어촌 지역 방송국들이다. 대도시 방송국과 달리 이들은 CPB의 연방 지원금 의존도가 높아 재정 파탄과 운영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 )같은 지역의 대형 방송국은 CPB에서 지원받는 보조금 비중이 5% 미만이지만, 인구가 적은 농어촌 방송국은 전체 예산의 40~50% 이상을 CPB 보조금에 의존해 왔다. 그래서 알래스카, 아칸소, 웨스트버지니아 등에서 인력감축은 물론이고, 방송중단 선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농어촌 지역에서 공영방송은 지역 뉴스를 생산하는 유일한 매체였다.
전국 1500여 개 공영방송국 중 약 400~500개의 소규모 농어촌 방송국이 1년 내 운영 중단 위기에 처했다. CPB 해산 이후 지역 취재 인력이 해고되면서, 지역 사회의 감시 기능이 사라진 '뉴스 사막(News Desert)'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CPB는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협력하여 농어촌 지역의 국가 비상 알림 인프라를 관리해 왔다. 따라서 방송국이 폐쇄되면서 토네이도, 산불, 홍수 및 눈사태 등 재난 발생 시 주민들에게 즉각적으로 경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망이 무너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예산중단 이후, 폐쇄 위기에 처한 일부 지역 공영방송국들은 생존을 위해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주파수 매각과 상업 광고 도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한편 자체 제작한 지역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유튜브나 지역 케이블망에 무료로 푸는 대신,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혹은 지역 상업 방송국에 유료로 판매하여 독점권을 넘기고 있다. 존립을 위해 통폐합도 시도하지만, 2026년의 지역 공영방송사는 우리가 알던 '비영리 교육 방송'의 모습에서 벗어나 사실상 기부금에 의존하는 소규모 상업 방송의 형태로 빠르게 변모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돌아보는 포인트 두 표와 세 표
1967년 공영방송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공영방송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고, 교육·문화적 가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가 교육과 문화 발전을 위한 공영방송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법안은 큰 반대 없이 의회를 통과했다. 상원에서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하원에서는 305대 91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레이건 정권 이후 지속적으로 예산 감축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여론에 밀려 실현하지 못하였는데 트럼트 2기 정부에서 좌편향을 이유로 예산 회수를 시도한 법안(‘Rescissions Act of 2025’)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스티브 스칼리스에 의해 발의, 통과되면서 CPB의 2년치 예산 11억 달러를 회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두 표와 세 표이다.
해당 법안이 하원에서 최초 표결하였을 때 ‘찬성 214 대 반대 212’로 2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상원 표결에서는 ‘찬성 51 대 반대 48’로 3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하원 상원 수정안 승인에서는 ‘찬성 216 대 반대 213’으로 3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불과 2표와 3표 차이로 CPB의 공영방송 지원에 쓸 2년치 예산을 회수하여 결국 CPB 해산에 이르게 한 것이다.
출발은 상원에서의 만장일치와 하원에서의 77%의 찬성으로 시작되었는데 58년 이후에는 2표와 3표로 끝내게 되는 이야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철저히 정파적으로 양분된 사회가 가져온 비극이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정권이 바뀌면, 공영방송을 살리는 방향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도 2표나 3표로 차이로 가결되는 것이라면, 미국에서 공영방송의 미래는 없다.
미국의 이야기는 물 건너의 이야기가 아니다
CPB의 CEO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공영방송지원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제도적 장치의 효과도 정파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정파성을 벗어나 다시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공영방송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영미디어의 필요성과 이를 구현하려는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이야기는 물 건너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를 제대로 보고 반성할 때이다.
글 : 김국진 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김국진 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사진>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17년) 출신으로 미디어미래연구소를 설립해 21년간 운영했다. 지금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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