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치기 90%가 스테이블코인 이용"… 불법 외환거래에 무방비, 외국환거래법 개정 '시급'
[디지털데일리 조윤정기자] 최근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가 급증하며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가격 변동성이 적은 스테이블코인이 범죄 자금의 주요 해외 반출 통로로 악용되고 있어 외국환거래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초국가범죄와 가상자산 정책 세미나에서 이명구 관세청장은 "가상자산이 혁신과 성장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익명성과 유동성을 악용해 초국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액 14조9000억원 중 92%에 달하는 13조7000억 원이 가상자산 관련 범죄였다. 특히 불법 송금(환치기) 수법의 83%가 가상자산을 이용했으며 그중 90% 이상이 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삼았다.
스테이블코인은 전통적인 은행 중개자 없이도 글로벌 거래가 원활하게 가능하며 국경과 시간대의 제약이 없어 저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전통 금융기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국가 간 자금 세탁 과정을 종결할 수 있어 범죄자들의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로 환치기 수법의 현대화를 꼽았다. 정영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과거의 환치기가 국가 간 업자들 사이의 두터운 신뢰를 전제로 했기에 자금 탈취의 위험이 상존했던 반면, 가상자산 기반의 신종 환치기는 자산 전송 행위 자체만으로 국경 간 가치 이전이 즉시 실현된다고 분석했다. 정 변호사는 “환치기 방식이 예전과 달리 조금 더 고급화되고 쉬워졌다”고 지적했다.
조직적인 시세차익 거래인 아비트리지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해외보다 국내 시세가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한 무등록 외국환 업무및 미신고 가상자산거래업을 반복하는 행위가 국부를 유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불법 거래가 초국가 범죄와 직결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조광선 관세청 외환조사과장은 "보이스피싱이나 도박, 성매매 등에서 발생하는 자금들이 가상자산의 편리함과 익명성 때문에 더욱더 쉽게 해외로 나갔다"며 "현재는 가상자산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가 부족한 상황으로 외국환거래법 개정으로 감시가 의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적 진화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는 온체인 데이터 분석이 제시됐다. 구민우 체인리시스 부사장은 "기술적으로 진화한 범죄에는 기술로 대응해야 한다"며 블록체인 상의 모든 거래 기록인 온체인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구 부사장은 홍콩 OTC 거래소를 통한 조직적 외화 반출 등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개별 거래의 형식적 요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자금 흐름을 조망하는 모니터링이 병행된다면 불법 외환거래를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도권 편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도 논의됐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이 결국 가상자산 결제 시장의 메인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외국환거래법상 대외지급수단으로 명시해 관리망 내로 포섭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일본의 사례처럼 일정 금액 이상의 가상자산 전송 시 사전 신고나 사후 보고 의무를 부여하는 등 트래블 룰과 자금세탁 방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선영 재정경제부 외화분석과장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취합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본 거래 정보를 분석할 수 있고, 관세청 등 유관 기관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불법 거래를 방지하고 우회 거래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청 또한 올해 서울세관에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가상자산 추적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초국가 가상자산 범죄 대응 체계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방침이다.
신상훈 김앤장 전문위원 겸 연세대 겸임교수는 “현재 스테이블코인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지만, 자금 세탁 방지(AML)나 외국환거래 규제 등 부대 법령에 대해서도 국회 차원에서 지금부터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문가들과 함께 법안을 정비해야만 향후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도입됐을 때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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