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팔기만 하면 장땡" 다이슨·DJI '파스칼' 韓 표준무시…로봇청소기 '와트' 추세에도 '파스칼' 고집

옥송이 기자

다이슨 스팟앤스크럽 Ai 로봇 청소기 [사진=다이슨]

[디지털데일리 옥송이기자] "그 논리는 적합하지 않은데요. 파스칼(Pa)을 참고로는 쓸 수 있겠지만, 흡입력에 대한 절대적인 단위로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4일 청소기 시험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한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로봇청소기 제조사들의 행보에 대해 위와 같이 꼬집었다. 한국은 무선청소기를 비롯해 로봇청소기의 흡입력 단위를 '와트(W)'로 일원화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제조사들이 흡입력 단위로 와트보다는 '파스칼(Pa)' 표기가 적합하다는 입장을 펼친 데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연초부터 글로벌 격전지로 부상했다. 흔히 한국 가전시장은 '외산의 무덤'이라 불리지만, 유독 로봇청소기 분야만큼은 중국산 브랜드가 주류를 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가전 양대 산맥이 지난 2024년 첫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내놓으며 추격에 나섰으나, 지난해 신제품 출시가 지연되는 등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외산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드론으로 유명한 중국의 DJI와 무선 청소기 강자 다이슨이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한국 시장에 전격 출시하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국내 기술 표준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DJI가 선보인 첫 올인원 로봇청소기 '로모(ROMO)'는 2만5000파스칼이라는 높은 수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같은달 다이슨이 선보인 '스팟앤스크럽 Ai 로봇청소기' 역시 흡입력을 1만8000파스칼로 표기하고 있다. 두 제조사 모두 소비자가 객관적으로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와트 및 에어와트(AW) 수치는 공개하지 않은 채, '만 단위'의 파스칼 경쟁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DJI의 첫 올인원 로봇청소기 '로모' [사진=DJI]

다이슨 측은 "스팟앤스크럽 Ai는 진공 및 물 청소를 모두 가능케 하는 올인원 로봇 청소기"라며 "업계 표준에 따라 흡입력을 파스칼로 표기해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입장이다. 이어 "마른 먼지부터 액체 오염까지 함께 처리하는 복합적 환경의 제품 특성상 파스칼 단위가 더 적합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유관 기관 및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얼토당토않은 논리'라는 반응이다. 청소기 시험기관의 한 관계자는 "파스칼은 공기가 흐르지 않을 때 나오는 진공도의 압력 단위"라며 "청소기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기기인 만큼, 제품별 흡입구 단면적과 공기의 흐름(유량)을 반영한 '와트'로 표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엄밀히 파스칼과 와트는 완전히 다른 개념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환산도 가능하다. 그러나 청소기 성능을 표기할 때 '무엇을 측정했는지'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파스칼이나 와트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개념이지만, 시중 제품에 표기된 파스칼은 주로 '모터 자체의 출력'을 측정한 값"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가표준이 채택한 와트(W)는 공기의 흐름(유량)과 진공도(압력)를 곱해서 계산하는 방식으로, 최종 흡입구에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실질적인 청소 능력을 나타낸다.

특히 제조사들이 파스칼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숫자 마케팅'의 일환일 수 있다고 짚었다. 와트는 통상 십~백 단위로 표기되지만, 파스칼은 만 단위로 표기된다. 관계자는 "마치 5000만 원은 작아 보이고 5만 달러는 커 보이는 착시 효과와 같다"며 "숫자가 크면 성능이 좋아 보이는 소비자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또한 높은 파스칼 수치만 강조하는 반면 와트가 낮은 경우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관계자는 "파스칼 수치가 높다는 건 단순히 원천 엔진(모터)의 세기가 좋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며 "모터가 아무리 강력해도 청소기 내부 설계가 부실해 실제 흡입구까지 힘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면, 전력만 많이 쓰고 정작 청소 성능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제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미 제도를 정비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해 11월 KS표준(KS B 7303) 개정을 통해 로봇청소기 흡입력 시험 및 표기 방법을 와트(W)로 명확히 했다. 앞으로 KS 인증을 획득하려는 로봇청소기는 반드시 와트 표기를 따라야 한다. 이는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인증받지 않은 파스칼 표기를 마치 공인된 성능인 양 광고하는 것은 허위·과장 광고의 소지가 될 수 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및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들은 "흡입력 와트 표기는 한국만의 인증이 아닌 글로벌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국제적으로도 흡입력 단위를 와트로 도입하기 위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글로벌 제조사들이 파스칼이 글로벌 표준을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옥송이 기자
ocksong@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