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호 칼럼]국민 생명 볼모로 한 의사들 집단행동 지겹다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2027학년도 의과대학 증원 규모가 이달 중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면서 의료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지난 3일 포문을 열었다.
협의회는 "의대 정원 논의가 숙의와 검증보다 속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깊이 우려한다"면서 "최소한의 검증 자료가 제출·공개되기 전까지 정원 결정을 잠정 유예해 달라"고 촉구했다.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은 2년 전의 의료 파동 전초전을 예고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협의회는 정부 일정의 속도를 지적하고 있지만 올해 수험생들에게 적용될 의대 증원 문제를 3월 개학 때까지도 손 놓고 있으란 주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 때 시행까지 했던 사안인데 새로운 정책이라도 되는 것 처럼 윽박지르면 국민들은 역겨워 할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의대 증원 규모를 논의했다. 2037년까지 의사 인력 부족 규모를 1주일 전 제시됐던 2530~4800명 범위에서 4262~4800명으로 좁혀 논의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6개 모형 조합에서 3개 모형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석 위원들 가운데 의사협회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증원 규모는 공공의대(400명)와 지역 신설 의대(200명)를 제외하고, 의대 증원 기간( 2027~2031년)을 고려해 계산하면 연간 700~800명 선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의료 대란 당시에 비해 인력 부족 규모나 증원 수치가 훨씬 적은 데도 불구하고 의료계 입장에 변화가 없어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큰 틀에 공감한다. 환자들이 병원의 거절로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사건이 부지기수다. 다만 증원 규모가 2000명이 아니라 500명 정도였다면 홍역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견을 표출하곤 했다.
지난 2000년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에 의해 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게 돼 있다.
의료 사태가 한창이던 2024년 9월 보건행정학 분야의 한 원로 교수는 의료정책포럼에서 정부가 의료계획을 수립하지 않아 의대 증원 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극복에 역량이 집중되면서 인력, 시설, 물자, 기술 등 보건의료 자원 관리를 위한 중·장기 의료계획을 수립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때와 현 정부에서 판단하는 의료 인력 추계는 큰 격차가 난다.
지난 정부에서는 2035년까지 1만 5000명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판단해 2025학년도에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렸다. 1만 5000명은 최소한의 숫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의대생 휴학 등 파장이 커지자 2026학년도에는 의대 증원은 없었던 일이 됐다. 의대 정원이 5058명에서 3058명으로 원상 복귀되면서 수험생이나 교사, 학부모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의대 증원 규모는 이전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 수준이다. 의사 부족 수 추계도 판이하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의료 정책이 출렁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래에 정확한 의료 인력 규모를 산정하기는 쉽지 않다.
고령사회로 노인층의 의료 수요는 늘어나지만 저출산 여파로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수요는 줄어든다.
AI의사도 나온다고 한다. 의료계가 전문가 영역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의대 증원과 관련해 배타적 태도를 취해선 안 된다.
전문가 집단 답게 핏대만 세우지 말고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치열하게 정책 대결을 할 때 국민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의대 증원을 하면 교육이나 의사의 질(質)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 의사들이 또 다시 밥 그릇 지키기에 나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24년 135명인 서울대 의대 정원은 1983년에는 260명이었다고 한다. 의사들의 주장이 맞다면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인원도 많은 1980년대 서울대 의대 출신들의 실력이 정원이 축소된 이후 배출된 의사들 보다 떨어져야 하는데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의료계 집단 행동의 피해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돌아 간다.
한 국립지방대 병원은 현재 전임의 모집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충원율은 30%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료, 필수의료 붕괴의 단면이다.
2004년 KTX 개통으로 수도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지역 의료계에는 큰 타격이다. 실손보험 확산에 따른 과잉 진료도 의사 인력 수급 추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라마다 의사수 추계 방식은 다양한 만큼 통계 수치와 관련한 기(氣)싸움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를 이기려 한다면서 의료계를 권력으로 눌러서도 안 된다. 의학은 자신들만의 전문가 영역이라면서 데이터나 대안은 없이 집단 행동으로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정치권도 의료계와 정부가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디지털데일리 주필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아리랑국제방송 시사보도센터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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