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20조 영업익' 삼성, 웃지만 못하는 이유…'세트 원가' 딜레마 [반도체레이다]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 HBM3E, HBM4 실물. [사진 = 배태용기자]
삼성전자 HBM3E, HBM4 실물. [사진 = 배태용기자]

[디지털데일리 배태용기자] 삼성전자가 1년 만에 D램 1위를 되찾고 4분기 20조원대 영업이익을 내며 메모리 호황을 확실히 탔다. 하지만 전사로 보면 마냥 웃기만 어려운 실정이다. 메모리를 파는 DS(반도체)와 그 메모리로 스마트폰·가전을 만드는 세트 사업이 한 회사 안에 있기 때문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5년 4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 93조원, 영업이익 20조원 안팎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세 배 넘게 늘었다. 서버·PC·모바일 전반에서 D램·낸드 가격이 오른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성과급 등 일회성 비용과 시스템LSI·파운드리 적자 확대가 없었다면 시장 기대치와의 차이도 더 줄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D램 판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5년 4분기 삼성전자가 매출 기준 D램 1위에 복귀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회복을 이끈 축은 HBM만이 아니다. 데이터센터용 DDR5, 서버·PC용 범용 D램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점유율 지형이 바뀌었다. 'AI 특수'가 특정 제품이 아니라 메모리 전반으로 번진 셈이다.

주목되는 점은 메모리 호황은 곧바로 세트 원가 상승을 낳는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DS와 MX(모바일), TV·가전 등 세트 사업부를 모두 두고 있다. DS 입장에선 가격과 마진이 올라갈수록 좋지만 세트 입장에선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오를 수록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길어질수록 전사 실적과 사업부별 체감 온도는 엇갈릴 수밖에 없다.

세트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크게 부품값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올리거나 내부에서 다른 비용을 줄이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단순 인상은 판매량을 흔들 수 있다보니 삼성전자의 고심이 깊어지는 것이다. CES 2026 기자간담회에서 노태문 MX사업부장(사장)이 부품 가격과 제품 가격 부담을 언급하며 "시장과 소비자 반응을 보면서 정교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3분할한 모습. [사진=옥송이기자]
갤럭시 Z 트라이폴드를 3분할한 모습. [사진=옥송이기자]

대응은 보다 세분화될 가능성이 크다. 프리미엄 플래그십과 폴더블처럼 가격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제품군에선 일정 수준 판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대신 중저가 라인업에선 기본 탑재 메모리 용량 조정, 카메라·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 사양 재구성, BOM(부품 원가) 구조 손질 등을 통해 원가를 맞추는 방식이 검토될 수 있다.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만큼 나눠 올리느냐의 문제인 셈.

유통·마케팅 전략도 변수다. 출고가는 다소 올리더라도 통신사 보조금·프로모션, 온라인 전용 모델을 통해 소비자가 느끼는 실구매가는 관리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제조사·유통·통신사 가운데 누군가는 부담을 더 지게 된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길어질수록 어느 쪽이 얼마만큼 비용을 떠안을지 조정이 필요하다.

외부 고객사와 자사 갤럭시·TV·가전에 들어가는 메모리 가격을 한꺼번에 정해야 하다보니 삼성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DS가 외부 거래 수준의 가격·마진을 내부 세트에도 그대로 요구하면 MX와 가전 사업부의 원가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세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부 거래 가격을 낮추면 DS는 수익은 일부 양보해야 한다. D램 1위 탈환이라는 '성적표' 뒤에 어느 사업부 손을 더 들어줄지라는 전사 조정 과제가 붙어 있는 셈이다.

시스템LSI·파운드리 부문 상황도 변수다. 전사 실적은 메모리가 끌어올리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수탁생산 사업은 아직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보긴 어렵다. AI용 HBM4와 차세대 서버용 D램이 본격 양산·출하되기 전까지는 범용 메모리 사이클에 대한 의존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메모리 가격과 세트 원가가 동시에 출렁일수록 삼성 입장에선 메모리로 번 돈을 다른 사업에서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느냐는 고민이 더 커질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삼성 반도체에는 분명 호재지만, 같은 그룹 안에 세트 사업이 있는 만큼 전사 관점의 계산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올해는 '얼마나 비싸게 파느냐'보다 메모리에서 번 돈을 세트와 시스템 반도체 쪽에서 얼마나 지켜내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