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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6 결산] ③ "가성비 넘어 '기술 공포'로"… 中 공습에 韓 '경험' 판다

라스베이거스(미국)=김문기 기자
하이센스 하이로봇 01. [사진=배태용기자]
하이센스 하이로봇 01. [사진=배태용기자]
4족 보행 로봇, 일명 '로봇 개'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4족 보행 로봇, 일명 '로봇 개'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스베이거스(미국)=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CES 전시장을 둘러보고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가 '프리미엄'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는 동안, 중국은 하드웨어의 정점까지 올라왔다."

9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6 현장에서 만난 국내 전자업계 고위 임원과 해외 기업 지사장에 따르면 올해 CES는 겉으로는 'AI의 향연'이었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컴백 차이나'의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이슈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카피캣(Copycat)'의 오명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그들은 이제 한국 기업들의 뒤를 쫓는 추격자가 아니라, 압도적인 제조 역량과 내수 시장의 데이터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의 심장부를 겨누는 '파괴자(Disruptor)'가 되었다.

스타워즈의 드로이드 'BD-1'을 닮은 디즈니의 소형 로봇부터 사람의 형태를 한 휴머노이드까지, 각기 다른 생김새의 로봇들이 엔비디아의 AI 두뇌를 탑재하고 무대를 장악했다. [사진=김문기 기자]
스타워즈의 드로이드 'BD-1'을 닮은 디즈니의 소형 로봇부터 사람의 형태를 한 휴머노이드까지, 각기 다른 생김새의 로봇들이 엔비디아의 AI 두뇌를 탑재하고 무대를 장악했다. [사진=김문기 기자]

◆ 중국의 역습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이번 CES에서 확인된 중국의 전략은 '하드웨어의 범용화(Commoditization)'를 통한 시장 장악이다. 특히 이번 전시의 화두였던 로보틱스 분야에서 그 위협은 실재적이었다.

중국의 유니트리(Unitree), 푸리에 인텔리전스(Fourier Intelligence), 애지봇(Agibot) 등은 테슬라 옵티머스에 버금가는 운동 성능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을 2만 달러(약 2800만원) 대에 쏟아냈다. 한국이나 미국 기업들이 시제품 단계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다듬고 있을 때, 중국은 이미 양산 라인을 깔고 가격을 5분의 1 수준으로 낮춰 시장에 뿌리기 시작했다.

가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하이센스(Hisense)와 TCL은 삼성·LG의 텃밭인 98인치 이상 초대형 미니 LED TV와 AI 가전 라인업을 대거 선보였다. 그들이 내세운 'AI 화질 프로세서'와 '스마트홈 허브'의 성능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기업들을 따라잡았다.

'한국 제품 성능의 95%를 구현하면서 가격은 60% 수준'이라는 그들의 공식은 고물가 시대의 글로벌 바이어들을 흔들기에 충분했다는 후문이다.

홈 로봇 '클로이드'와 핵심 부품 'LG 액추에이터 악시움' [사진=옥송이기자]
홈 로봇 '클로이드'와 핵심 부품 'LG 액추에이터 악시움' [사진=옥송이기자]

◆ '데모'는 끝났다…수익 가속화

중국의 하드웨어 공습과 맞물려, CES 2026을 관통한 또 다른 화두는 '수익화(Monetization)'다. 지난 2년이 "우리도 AI를 할 줄 안다"를 증명하는 '기술 과시'의 시기였다면, 2026년은 '그래서 그 AI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증명해야 하는 'ROI(투자 대비 수익) 검증'의 시기다.

현장에서 만난 글로벌 투자사 관계자는 "화려한 챗봇이나 춤추는 로봇은 이제 지겹다.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킬러 서비스'가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곧 하드웨어 스펙 경쟁의 종말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NPU(신경망처리장치)를 넣어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효용이 없다면 그저 비싼 기계일 뿐이다. 기업들은 고비용의 AI 칩과 센서를 탑재하면서도 제품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원가 혁신'과, 하드웨어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독 모델' 발굴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8일(현지시간) CES 2026을 맞이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 부스를 차린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전시 부스를 찾았다. [사진=김문기 기자]
8일(현지시간) CES 2026을 맞이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 부스를 차린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전시 부스를 찾았다. [사진=김문기 기자]

◆ 한국의 생존법, "기계를 팔지 마라, '시간'과 '경험'을 팔아라"

하드웨어 제조 경쟁력에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장을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로 옮겼다. 중국이 베낄 수 없는 '사용자 경험(UX)'과 '연결성'으로 진입장벽(Moat)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 노태문 사장이 제시한 'AI 컴패니언'과 '앰비언트 인텔리전스(Ambient Intelligence)'는 철저한 '락인(Lock-in)' 전략이다.

삼성은 전 세계에 깔린 4억 개의 기기(Installed Base)를 무기로 삼았다. 냉장고, TV, 스마트폰, 웨어러블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된 '스마트싱스(SmartThings)' 생태계 안에서, AI는 사용자의 패턴을 학습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이 탁월한 연결성 안에서는 중국산 TV가 아무리 화질이 좋고 저렴해도, 삼성의 생태계와 연동되지 않는 한 '반쪽짜리 기기'로 전락한다. 삼성은 이를 통해 하드웨어 판매 수익을 넘어,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서비스로 수익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LG전자 류재철 사장의 '가사 해방' 역시 단순한 로봇 판매 전략이 아니다. LG는 이번 CES에서 로봇을 판매하는 B2C를 넘어, 로봇의 핵심 부품(액추에이터)과 제어 OS를 공급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확장을 선언했다.

또한 스마트홈 플랫폼 '웹OS'를 타사 TV와 기기에 탑재하며 광고 및 콘텐츠 수익을 창출하는 '미디어 플랫폼' 전략을 가속화했다. 기기를 한 번 팔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겠다는 전략이다.

라스베이거스(미국)=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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