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룡·나훈아 울린 원로배우 김지미, 美서 별세 …영화인장 준비

배우 김지미 [사진=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조은별기자]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덕성여고 재학 중이던 1957년 고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 1990년대까지 약 7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한국영화계 대표 스타배우다.
고인은 김수용 감독(1974년 '토지'), 임권택 감독(1985년 '길소뜸', 1987년 '티켓') 등 한국 영화계 거장들의 작품에 출연했고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청룡영화제 여우 주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 등 당대 각종 영화 시상식을 휩쓸었다. 그가 출연한 작품만 700여편에 달한다.
1980년대 자신의 영화사 지미 필름을 설립,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길소뜸'(1985)으로 제 24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티켓'(1987)으로 제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마지막 출연작은 이장호 감독의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다.

배우 김지미 [사진=연합뉴스]
고인의 빼어난 외모로 남성편력을 자랑했다. 1958년 18세 나이에 16세 연상의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지만 1962년 이혼했다.
이후 1962년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최무룡과 간통혐의로 구속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김지미는 이듬해 최무룡이 배우 강효실과 이혼할 때 위자료 400만원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후 최무룡과 혼인했지만 1969년 이혼했다. 최무룡과 강효실의 아들인 최민수는 성장 후에도 김지미를 어머니처럼 모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6년에는 7세 연하의 가수 나훈아와 만나 82년까지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1991년 심장 질환의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4번째 결혼을 했지만 11년 뒤 결별했다.
이런 화려한 이력 때문에 고인은 종종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은 2003년 한 인터뷰에서 "나이 많은 남자, 어린 남자, 능력 있는 남자, 다 살아봤는데 남자는 별거 아니더라. 그렇지만 함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최무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생 후반부에는 영화 행정가로 활동했다.
1995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1998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을 준비 중이다.
유족으로는 최무룡과 사이에서 낳은 딸 최영숙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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