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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결산/반도체] HBM이 집어삼킨 메모리 시장…'다음 판'은 HBM4·북미·캐파 전쟁

배태용 기자

지난해 12월3일 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위기는 올해 6월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다. 정권 교체 직후 내란 특검 정국이 이어지면서 2025년의 캘린더는 유례없이 촘촘했다. 정치·사회적 격랑 속에서도 산업 현장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관세 전면전, 대형 보안 사고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한국 산업 지형은 이전과 전혀 다른 판으로 재배치되는 한 해를 보냈다. 계엄 사태 이후 정책 기조 전환 속에 디지털데일리는 각 분야 결산을 바탕으로 2025년 한국 산업의 흐름을 종합 정리한다. <편집자 주>

SK하이닉스 HBM4 16단 실물. / [사진 = 배태용 기자]
SK하이닉스 HBM4 16단 실물. / [사진 = 배태용 기자]

[디지털데일리 배태용기자] 2025년 메모리 시장을 한 줄로 요약하면 결국 HBM으로 귀결된다. SK하이닉스는 HBM3E로 엔비디아 AI GPU에 들어가는 메모리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며 시장 지배력을 굳혔고 삼성전자는 뒤늦게 HBM3E 자격을 확보하며 겨우 판 안으로 복귀했다. 같은 기간 DDR5 전환 속도도 빨라지면서 이른바 범용 D램의 무게 중심은 고사양 제품 쪽으로 무겁게 쏠린 한 해였다. HBM은 더 이상 메모리 라인업의 한 제품이 아니라 메모리 산업을 위·아래로 꿰는 수직축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 HBM이 집어삼킨 해…"단일 제품이 아니라 산업의 수직축"

올해 HBM 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SK하이닉스였다. HBM3E 세대에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주력 GPU를 중심으로 주요 AI 고객의 물량을 대거 확보하며 HBM 매출 비중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외신과 시장조사업체들도 SK하이닉스를 엔비디아의 핵심 HBM 공급사로 지목하며 HBM이 전체 D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는 이 시장에 사실상 한 박자 늦게 올라탔다. HBM3·HBM3E 초기에는 평가 지연과 수율 이슈로 고전했지만, 올해 들어 주요 GPU 고객사를 대상으로 8단·12단 HBM3E 제품 검증을 통과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최소한 HBM3E 공급 자격을 갖춘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타이밍은 늦었지만 문턱은 넘었다"는 평가와 함께 HBM3E 경험을 바탕으로 HBM4 세대에서 다시 판도를 재구성할 여지는 열렸다고 본다.

HBM이 이렇게 시장 중심으로 올라오면서 DDR5 전환도 속도를 냈다. 서버·PC·모바일 메모리 수요가 DDR5·LPDDR5 계열로 이동하는 사이 범용 D램 내부에서도 '저가/구형 공정'과 '고속·고용량·저전력' 제품 간 격차가 커졌다. 구형 공정 기반 저가 제품은 점차 설 자리가 줄고 HBM·고용량 DDR5·LPDDR 계열이 수익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구조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 HBM4 시험대…삼성 1c vs SK 1b, 공정·패키징 동시 승부

하반기 들어서는 HBM4를 둘러싼 물밑 경쟁이 본격화됐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HBM4 공급망을 두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모두 협력을 타진하는 가운데 양사는 서로 다른 공정 세대를 앞세워 승부수를 띄운 상태다. 삼성전자는 1c(차세대 10나노급) 공정을, SK하이닉스는 현재 양산 중인 1b 공정을 기반으로 HBM4를 설계하는 방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SK하이닉스는 검증된 1b 공정으로 초기 안정성과 개발 속도를 확보하는 전략이고 삼성전자는 더 진보된 1c 공정으로 미세화·전력 효율을 끌어올리는 대신 수율과 공정 난이도 부담을 함께 지는 구조다. 여기에 16단 적층, 베이스다이 아키텍처, 저전력 인터페이스 등 세부 설계 변수가 더해지면서 세대 교체의 기술 난도는 한층 높아졌다. SK하이닉스는 이미 16단 HBM4를 2026년 출시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건설이 진행 중인 삼성전자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건설이 진행 중인 삼성전자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패키징 경쟁도 HBM4 세대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TSMC의 CoWoS 라인 증설 속도가 GPU 공급 전체의 '진짜 병목'으로 작용했지만 앞으로는 메모리 업체 자체의 패키징 역량이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라인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본딩과 CoWoS 계열 패키징 인프라를 통합하는 전략을 검토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청주·이천과 향후 용인 클러스터, 해외 패키징 거점을 연계해 'HBM 패키징 전용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HBM4 세대에서 두 한국 업체를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수율·성능·원가·공급 안정성을 비교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리기보다는 제품·세대별로 공급 비중이 나뉘는 방향으로 그림이 그려질 가능성이 크다.

◆ 트럼프 2기와 북미 공급망…평택·용인·테일러가 2030년 판도 가른다

정치·지정학 변수도 2025년 메모리 판도를 규정한 중요한 요소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자국 우선' 기조와 대중 견제 방향성은 큰 틀에서 유지되는 모양새다. 반도체 보조금·IRA(인플레이션감축법)·AI 관련 규제 역시 세부 조정은 있더라도 첨단 반도체·AI 공급망을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방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투자와 한국 평택 투자를 동시에 키우며, HBM4 이후 세대에서 '미국 생산 로직+한국 생산 메모리' 조합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전략에 방점을 찍고 있다. 테일러 공장은 첨단 로직·AI 칩 생산을, 평택 P단지는 HBM·DDR5와 일부 파운드리 공정을 함께 담당하는 역할 분담 구도가 부상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HBM·차세대 D램·낸드·패키징까지 아우르는 핵심 거점으로 삼는 동시에 미국 내 첨단 패키징·후공정 투자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하며 북미 고객사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내에 10년간 600조원 규모 투자 비전을 제시하면서 용인 클러스터를 그 축 가운데 하나로 명시한 만큼 향후 HBM4·HBM5 이후 세대에서도 용인이 글로벌 캐파 전쟁의 핵심 무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BM3E까지는 SK하이닉스가 한 발 앞서 판을 이끌었다면, HBM4부터는 공정 세대·패키징·생산 거점을 모두 묶은 '종합전'이 될 것"이라며 "평택·용인·테일러와 미국·아시아 패키징 기지까지 포함한 'HBM4 지도'가 2030년 메모리 판도를 상당 부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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