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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만들고 파는 시대는 끝났다"…AI가 바꾼 공급 공식 [소부장반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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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용 기자

가격보다 성능, 생산보다 계약이 경쟁력으로

삼성·SK, 고객 맞춤형 반도체 기업으로 진화

HBM4. [ⓒSK하이닉스]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근본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을 먼저 돌리고 고객을 찾는 '선생산 후판매' 구조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고객과 먼저 계약을 맺고 그에 맞춰 생산하는 '선계약 후생산'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의 부상은 반도체 산업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가격 경쟁 중심의 커머디티(Commodity) 시대가 저물고, 성능과 관계 중심의 스페셜티(Specialty)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 맞춤형 계약 구조의 확산…'선계약 후생산'이 기본 공식 =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B2C(소비자용)에서 B2B(기업 맞춤형)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중심의 수요 시대에는 시장 예측이 가능했지만,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투자가 폭발하면서 단일 고객의 주문 규모가 과거 수천만 대 스마트폰 출하에 맞먹는 수준으로 커졌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닌 '초대형 고객 맞춤형 생산' 체계로 재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반도체 생태계의 복잡성이 커지면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제품을 설계하고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화되고 있어서다. 과거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정해진 규격의 D램을 생산해 시장에 내놓았다면, 지금은 엔비디아·오픈AI·마이크로소프트 같은 AI 기업이 먼저 '이런 스펙의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전달한다. 메모리 제조사는 이에 맞춰 공정·소자 구조를 조정하고 생산 일정을 맞춘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선계약 후생산'이 업계의 새로운 경쟁 모델로 부상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객의 AI 모델 구조나 GPU 아키텍처에 따라 최적화된 대역폭·전력·발열 특성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납품 단가로 승부하던 과거와 달리, 제품 성능과 공정 안정성에 따라 계약 가격이 달라진다. 이제는 누가 더 싸게 파느냐보다 누가 더 효율적이고 고객 맞춤형으로 제품을 공급하느냐가 경쟁력이 된 것이다.

◆ 반도체, 이제는 '계약산업'으로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런 변화에 맞춰 빠르게 '고객 기반 반도체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는 DS부문은 HBM4와 DDR6 등 차세대 제품은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고객사의 GPU·서버 아키텍처 데이터를 반영해 맞춤형으로 설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고객별 AI 환경에 최적화된 HBM 설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 발열 제어, 적층 구조 안정성 등 실제 운용 환경에서 요구되는 요소를 면밀히 분석해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HBM4부터는 고객 맞춤형 로직 다이(Base Die) 설계를 도입해 AI 모델별로 성능과 전력 효율 요구가 다른 고객 수요를 세밀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주요 글로벌 AI 고객사와 협력해 워크로드 분석 및 공동 테스트를 진행하며, 이를 기반으로 차세대 AI 최적화 메모리 솔루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AI 학습 효율과 시스템 안정성을 높이는 맞춤형 패키지 구조를 선보여 엔비디아·AMD 등 주요 고객사와의 기술 협력 관계를 한층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HBM 이후 메모리 반도체는 사실상 시스템 반도체처럼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상품이 됐다"며 "이제 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 아니라 기술, 관계, 그리고 계약 속도"라고 진단했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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