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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로드-맵③] 고정밀지도 내주면 중국·러시아도?…외교·안보 변수로

채성오 기자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 통상 협의 대상에서 제외된 '고정밀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논의는 양 국가가 정상이 만나는 회담에서 다뤄지게 됐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나 반출을 신청한 구글을 비롯해 국내 공간정보 산업을 확장하려는 미국 빅테크들로 인해 한국 고정밀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논의는 글로벌 이슈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을 두고 우리 정부도 신중론을 취하고 있는 만큼 오는 11일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이하 협의체)'의 최종 결정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디지털데일리>는 'K-로드-맵'을 통해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이 갖는 함의를 ▲정책·안보 ▲산업·경제 ▲사회·윤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 K-맵 산업에 대한 비전과 경쟁력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구글과 애플이 우리 정부에 요구한 고정밀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요청을 허가할 경우, 미국 빅테크 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해외 기업들에게 정보산업 인프라를 개방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순 산업적 측면을 넘어서 부분 개방을 허가하게 되면 외교적인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 때문이다.

◆휴전국 안보 상황 고려해야…"한 번 허용하면 걷잡을 수 없어"

5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이번 고정밀지도 해외 반출 신청이 승인될 경우 바이두와 같은 중국 기업이나 러시아 업체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챗GPT 생성 이미지]


미국 기업에만 고정밀지도 반출을 허용하게 된다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혜국 대우는 한 나라가 어떤 나라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대한민국이 휴전국가인 점을 고려하면 정밀지도 반출은 안보라는 대원칙 아래 차별성을 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안보 차원의 우려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이니다. 안보 등을 이유로 자국 정부가 만든 정밀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국가는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러시아, 중국 등이 대표적이다. 사우디와 인도에서는 지도 데이터에 대한 해외 기업의 접근을 규제하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외국 기업이 인도 기업의 API를 통해서만 해당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고, 재사용 또는 재판매에 제한이 있다. 구글 역시 고정밀 지도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인도 기업의 API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 챗GPT 생성 이미지]


이스라엘의 경우 미국 내에서 킬-빙가만 개정안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이스라엘 고해상도 위성 영상의 수집 및 배포를 금지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외 기업 등 다른 상업적 출처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더 높은 해상도로 이스라엘의 위성 이미지를 수집하거나 배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4GSD 기준 이하의 고해상도 위성 사진은 금지되며 이는 약 1대5000~1대1만 축척지도와 비견된다.

중국 역시 사실상 반출을 제한하는 국가 중 하나다. 해외 기업은 중국 고정밀 지도 접근 및 반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 내 기업과 제휴를 맺어야 하며, 보안 시설에 대한 사전 블러링과 의도적으로 왜곡된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안 조치를 필수로 명시하고 있다. 구글은 중국 내에서 '오토내비'와의 제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 보안처리와 데이터 왜곡으로 인한 오차가 커 서비스가 정확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도학회지에 게재된 보고서에 따르면 고정밀 지도를 위성영상과 중첩하면 군사 핵심 시설 중 하나인 수도방위사령부 내 침투로, 보급선,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드론을 이용한 공격이 활발해지는 현대전에서 이런 데이터는 드론을 통해 즉각 타격을 실시하는 시스템이 구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정밀지도 내줬던 국가 살펴보니…벨기에·우크라이나는 구글 소송도

벨기에와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구글 어스와 지도에서 자국의 민감 보안 시설 정보가 노출되어 국제적인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례다. 2018년 벨기에 정부가 군사 시설에 대한 위성 사진 블러 미처리로 구글에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 우크라이나 군사 시설의 위치가 구글 어스 및 지도를 통해 러시아에 노출돼 우크라이나 정부가 구글에 항의한 바 있다.

[ⓒ 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는 1대2만5000 축척 지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쓸 수 있게 개방 중이지만 휴전국이자 분단국인 국가 안보 상황을 고려해 1대5000 이상의 고정밀지도는 국가정보원, 국방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9개 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반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구글이 2011년 최초로 신청한 이후 BMW, 가민, 애플 등이 반출을 신청했지만 안보상의 우려를 이유로 모두 허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에서 나타난 고정밀지도 데이터 반출의 부작용을 근거로 우리나라도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안정상 중앙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이란 사례에서 보듯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은 위험천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남북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 안보 현실을 우선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디지털 지도 서비스 '매피'. [ⓒ 관련 홈페이지 갈무리]


프랑스나 일본, 호주처럼 자국의 정밀지도를 해외 기업에 개방 후 자국 공간정보산업이 사양길을 걷게 된 사례도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1987년 설립된 '매피(Mappy)'가 대표적인 디지털 지도 서비스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2000년대 이후 정부의 개방적인 정책으로 구글 등 해외 기업이 도로망 데이터와 위성사진을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게 되자 점유율이 급감했다. 현재 구글 지도의 프랑스 내 점유율은 약 80%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구글에 지도 앱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리며, 50만유로의 손해 배상금과 1만5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호주와 일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97년 설립된 호주 기업 센시스는 '웨얼 이스'를 통해 현지 지도 플랫폼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으나 구글 맵이 오세아니아 지역의 대중교통 정보와 위성사진 데이터를 대규모로 확보하며 상황이 역전됐고, 일본에서도 '젠린'과 같이 현지 공간정보 분야 유니콘 스타트업이 구글 지도에 밀려 기업가치가 절반 넘게 하락했다.

모정훈 연세대학교 교수는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소멸이 가속화되고 이는 고용 감소와 세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내 산업 기반을 유지하고 국부 유출을 방지하는 정책 설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성오 기자
cs86@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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