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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산으로 갈라…국회·부처 동상이몽

강소현 기자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을 수행 중인 이상인 부위원장이 사퇴한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습.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의 개편이 예상된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조직개편이 화두다. 정부와 여당이 추천한 상임위원 2명이 방통위 내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합의제 기구라는 취지가 무색해진 가운데, 새 정부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다만,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방향과 관련해 다양한 안이 제시되면서 의견 조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업계에선 새 정부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이른바 ‘방송3법’ 의결을 끝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기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가운데, 미디어·콘텐츠 산업의 어려움 속 정책 효율을 높이기 위한 거버넌스 개편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방통위 개편 현실화되나…“유례없는 일방통행, 정상운영은 불가”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이르면 이번주 중 출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방통위를 포함한 미디어 거버넌스 전반의 개편 방향에도 이목이 쏠린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공약집을 통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법제와 거버넌스 논의를 위한 ‘미디어 혁신 범국민 협의체(가칭)’을 마련하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통설치법)을 전면 개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수술대에는 방통위가 가장 먼저 오를 전망이다. 방통위 개편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전 정권에서 특히 불거졌던 터다. 지난 2023년 8월부터 위원장을 포함한 여권 인사 2인만이 단독 의결하는 식으로 운영되면서다. 방통위는 5인 완전체지만, 야당 측 상임위원 2인의 임기가 차례대로 만료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은 여권 인사 2인 단독 의결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왔다. 방통위는 야당 몫 상임위원이 임명될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냐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공영방송 이사 교체 및 민영화 등 중차대한 문제들에 대해 야권 추천 상임위원이 없는 상태에서 의결한 것은 헌정상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방통위 출범 당시부터 예고됐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의 과반으로, 합의제 기구라는 운영 원칙을 살리지 못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 논리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방통위 설치법(제5조2항)을 살펴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여당 교섭단체 1인·야당 교섭단체 2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 5명 중 3명을 가져갈 수 있어 여당의 일방통행이 언제든 가능한 구조다.

이러한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유독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행법상 위원회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가 참석하면 의결할 수 있지만, 방통위가 2인 체제로 운영된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 이 같은 일방통행은 전례가 없었다고 국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영방송의 이사를 해임할 때는 이사회가 먼저 해임안을 의결한 뒤 방통위에 제안하거나, 감사원의 조사결과 죄가 밝혀졌을 때 그것을 근거로 해임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방통위에서 임의로 이사 해임안을 상정해 의결하는 것은 전례도 없을 뿐더러 이는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정계와 학계에선 방통위가 이제라도 합의제 기구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향후에도 방통위의 정상 운영은 불가하다는 판단이다.

◆ 개편방향은 공영방송위원회-정통미디어부 유력?…국회·부처 동상이몽에 의견 취합 난항

하지만 방통위 구조 개편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단편적인 조직개편 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합의제라는 방통위 구조와 별개로 ‘방송=언론’이라는 공식 탓에 미디어·콘텐츠 관련 정책 논의는 늘 정치적 공방에 매몰됐던 가운데, 방통위에서 보도 기능을 갖춘 공영 미디어와 시장 상업 미디어로 조직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아졌다.

지난 2022년 당시 양당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안에서도, 결국 큰 흐름에선 공영방송을 별도의 합의제 기구의 형태로 분리해야 한다는데 여야가 의견을 같이 했다. 문제는 미디어 산업을 방통위를 포함한 3개 부처가 동시에 관할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방통위는 지상파와 종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케이블TV와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으로 영역을 나눠 관장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주로 외주 제작이나 독립 제작 등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즉, 방통위를 포함한 미디어 거버넌스 조직개편을 위해선 과기정통부와 문체부까지 아우르는 대대적 거버넌스 개편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선 다양한 개편안이 제시된 가운데, 현재 의견 취합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미디어 거버넌스의 조직 개편 방향으로는 ▲영역별 2원 구조(공영 미디어-시장 상업 미디어) ▲기능별 2원 구조(규제-진흥) ▲미디어콘텐츠 단독 부처와 공공방송영상 위원회의 2원 구조 등 크게 3가지안이 거론된다.

이에 더해 과기정통부 등 정보통신기술(ICT) 개편안은 또 따로 있다.

먼저, 미디어 3학회는 공영방송을 제외한 방통위 업무와 과기정통부 2차관실 내 네트워크정책실 및 전파정책국, 문체부 일부 부서(영상콘텐츠산업과·방송영상광고과)를 통합한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이 현 과기정통부에서 부총리급 ‘과학기술부’와 ‘AI디지털혁신부’로 분리·재편하는 방안을, 디지털경제연합(디경연)은 ‘AI디지털혁신부’ 신설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의 경우 기후에너지부 설립에 따라 에너지를 떼어내게되는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소관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한 거버넌스 논의는 더욱 복잡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다만, 대부분 안이 미디어 거버넌스에 한해선 공영방송을 제외한 미디어 콘텐츠 영역을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국회의 입장은 또 다르다.

여당이 ▲과기정통부를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미디어부’로 쪼개거나, ▲현 과기정통부·문체부·방통위의 방송영상미디어 분야를 분리·통합하여 독임제 미디어부를 신설하고 방통위는 보도기능을 가진 방송의 공공영역 규제만을 담당하는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이야기되는 한편, 여당 일각에선 ▲현 방통위의 역할을 오히려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 출신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그동안엔 부처 이기주의가 강하게 작용해 부처 통합에 전사적으로 방해 공작을 폈다. 각 부처는 국회 소속 상임위원회 의원들을 끌어들였고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부처 통합의 과제를 풀지 못했다고 본다”라며 “결국 부처 간 유사 중복 업무 통폐합을 통한 신설, 기능 통합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한 축으로서 방송영상콘텐츠의 소프트파워 강화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고,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미디어 정책이 벗어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조직 개편에 적극 나서 주길 바라고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 “미디어 거버넌스 논의, 방송3법 의결로 끝나면 안 돼”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2회 변론에 출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이처럼 미디어를 포함한 ICT 거버넌스의 구체적인 개편 방향은 물론, 소관부처 수장의 하마평도 잠잠한 가운데 업계 일각에선 방송3법 의결을 끝으로 정부가 관련 논의를 종결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딩초 오늘(10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상임위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는 취소됐으나 빠르게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방통위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방송3법을 의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며 “이를 뒤집어 이야기하면, 여당이 방송3법의 빠른 처리는 곧 방통위를 빠르게 정상화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이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정부 조직개편이) 쉬운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방통위의 경우 정치와 직결되는 여론 형성기능을 보유한 공영방송의 소관부처이다 보니, 어느 정권에서나 (방통위를 통해) 특정 당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위성 측면에서도 (방통위 개편을) 10여년 넘게 미뤄온 가운데, 미디어 환경은 크게 바뀌었고 이젠 한계에 다다랐다”라며 “방통위를 개편해야 한다는 국민의 인식도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만큼 이제는 (개편을) 해야할 때가 왔다고 판단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방통위는 김태규 부위원장이 사의를 표하면서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방통위의 경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위원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방통위는 문재인 정부 인사인 한상혁 전 위원장을 비롯해 내부 직원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며 어수선해졌고, 끝내 한 전 위원장의 면직 처분으로 석달 가까이 위원장 공백을 겪은 바 있다. 다만,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경우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적다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에 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을 명분삼아 위원장 혹은 장관을 새롭게 임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소현 기자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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