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신제인 기자]
최근 종영한 JTBC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다소 아쉬운(?) 결말로 마무리하긴 했으나 올 겨울 많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대기업의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가 비밀업무를 수행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뒤, 재벌가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 거침없이 복수해 나가는 ‘사이다’ 전개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시간을 되짚어, 이처럼 '환생'을 다룬 작품은 거의 흥행 보증 수표다.
신드롬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tvn 드라마 <도깨비>도 환생을 다뤘다. 전생에는 미처 다하지 못한 일을 현생에서 이룰 기회가 마침내 주어지며 극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전생의 한(恨)을 이승에서 풀어내는 해원(解冤)의 과정, 또 그것을 통한 시원한 카타르시스, 우리가 ‘환생’이란 테마에 몰입하는 이유중 하나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들은 현재 삶의 막막함에서 오는 암울함도 환생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희망을 찾는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사건사고가 많고, 삶이 팍팍할수록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콘텐츠의 수요가 높아진다는 공식이 들어 맞는 셈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리셋(re-set)증후군도 이와 무관치 않다.자신의 현실과는 다른, 어떤식으로든 꿈꾸어보고 싶은 특별한 삶에 대한 강렬한 희구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한편으론 소위 '수저론'자들의 논리처럼, 때때로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벽이 ‘환생’이라는 극단의 방식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실제로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도 장남 진성준은 순양 자회사의 대표이사직 자리를 얻고 싶어하는 부하 직원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현실적 성공 해법이 그냥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 뿐 이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현실인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랜덤으로 주어지는 아이템이 플레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누구라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수고를 들여서라도 오프닝을 반복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는 유저가 살아가고 가꿔야 할 섬의 지형이 랜덤으로 배정된다.
해당 지형의 선택은 게임에서 주어지는 초반 미션들을 수행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본격적인 게임 시작에 앞서 더 나은 지형을 얻기 위해 게임을 껐다 켜는 것을 반복했다"는 증언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환생’은 아니더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방법은 없을까
우리네 인생도 전원 스위치만으로 리셋하면서 운을 결정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불가능하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에 감정이입을 하며 어느정도 욕구를 해소했던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미디어와 IT기술이 우리의 환생 체험을 도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특히 수명과 함께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초고령화 시대에 메타버스(Metaverse)와 같은 가상세계는 단순히 진화된 멀티미디어 플랫폼에 역할이 그치지 않는다.
현실에선 비록 내 자신이 하루 하루 허덕이며 사는 비루한 인생지만 메타버스속의 ‘또 다른 나’는 항상 행복하고, 당당하고 강하다. 그리고 그 속의 나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
그런 메타버스속의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현실속 환생’을 구현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지금보다 훨씬 진화된 AR∙VR등을 통한 XR(확장현실) 기술을 통해선 이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마치 ‘공간이동’하듯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언제가는 반드시 가보리라 맹세했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여행, 카리브해 호화 유람선에서의 카지노 게임, 북극에서의 개썰매 탐험도 환생 만큼의 욕구를 달래줄 것이다.
뿐만 아니다. 내 소유의 똑똑한 AI(인공지능) 로봇과 동행하면서 여생을 건강하고 외롭지 않게 보낼 자신감도 생긴다.
기술의 발달로 물리적인 시공간의 한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타임머신이 없어서 과거로 거슬러 오르지는 못해도 가상현실, 비대면 플랫폼을 통해 공간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늦추는 정도는 가능한 시대가 됐다.
결국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물리적 환생은 어려워도, ‘현재의 기억으로 다른 삶을 살아보는’ 소프트웨어적인 환생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쩌면 이는 인류가 개발한 기술 문명이, 역으로 인류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역할일지 모른다.
물론 ‘아무리 감쪽같아도 메타버스와 XR과 같은 가상기술일뿐 현실이 아니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냉소할 수 있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현생도 어차피 한 줌의 재만 남기고 떠나는 덧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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